한 감정평가사의 눈물 "자존심은 지켰지만 낙인은…"

- 부실감정 이유 1개월 업무정지
- 1년7개월 사투 끝 부당함 밝혀
- 공정성에 흠집… 일 잃을 수도

@임종철

#한 감정평가사가 자신이 한 감정평가 때문에 정부로부터 업무정지 징계처분을 받았다. 1개월의 업무정지였지만 공정성이 생명과도 같은 감정평가사에겐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부담은 됐지만 곧바로 정부를 상대로 처분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10개월여의 소송 끝에 결국 1심에서 승소판결을 받았다. 정부는 재판결과를 뒤집을 수 없다는 판단에 항소를 포기했다. '완벽한 승리'였지만 그가 되찾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자존심은 지켰다'는 자기 위안이 전부였다. 재판기간뿐 아니라 앞서 징계처분의 근거가 된 타당성 조사기간(2013년 12월~2014년 7월)까지 포함, 1년7개월간 일을 하지 못했지만 보상은커녕 정신적 스트레스만 덤으로 얻었다.

정부의 징계처분으로 '양심을 저버린 감정평가사'란 낙인도 사라지지 않았다.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개인의 '사투'를 들어줄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그는 "감정평가사 일을 천직이라 여기고 사명감을 가지고 일을 해왔지만 회의감을 느낀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해 고무줄 감정평가 논란으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던 서울 용산구 한남동 소재 민간임대아파트 '한남더힐'의 시행사 측(미래새한감정평가법인) 감정평가사 A씨의 이야기다.

지난달 말 서울행정법원은 A씨가 국토교통부를 상대로 제기한 업무정지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A씨의 한남더힐 감정평가는 '부적정'하다고 볼 수 없으며 따라서 한국감정원이 수행한 타당성조사를 근거로 내린 국토부의 징계는 위법하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국토부는 실익이 없다고 보고 항소를 포기했다.

그는 "자존심은 지켰지만 막상 결과가 나오니 허무하다. 타당성조사에 대응하고 소송을 준비하면서 1년7개월이란 시간을 허비했지만 재판에서 이겼을 뿐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했다.

앞서 국토부는 2014년 7월 한남더힐 부실감정을 이유로 A씨에게 1개월 업무정지처분을 내렸다. 당시 국토부는 한남더힐 세입자 측(나라·제일감정평가법인) 감정평가액(1조1699억원)과 시행사 측 감정평가액(2조5512억원)이 2배 이상 차이 나는 등 부실감정 논란이 일자 감정원에 타당성조사를 의뢰했다.

5개월간의 타당성조사 끝에 나온 결론은 양측 모두 '부적정'이었다. 하지만 타당성조사에서 제시된 한남더힐 적정가격 수준이 세입자 측과 시행사 측의 중간가격인 1조6800억~1조9800억원으로 나오면서 또다른 논란을 일으켰다. 이는 당시 한남더힐의 담보평가액(2조785억원)보다 낮은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국토부는 징계위원회를 열어 이 같은 타당성조사를 토대로 세입자 측과 시행사 측 감정평가법인과 감정평가사 모두 징계 처분했다. A씨는 이에 불복하고 즉각 소송을 제기, 승소한 것이다.

재판부는 국토부가 적법한 처분사유가 될 수 없는 사실을 바탕으로 징계처분을 내렸다고 판시했다. 특히 국토부가 징계사유 중 하나로 지목한 감정평가액의 적정성과 관련, "실제 거래시세, 담보평가액, 검찰수사 결과 등을 종합해보면 평가액의 적정성을 징계사유로 삼은 것은 위법하다"고 지적했다.

한남더힐의 실제 거래시세가 A씨의 평가액보다 높은 데다 통상 시세보다 낮게 평가되는 담보평가액도 2조원을 넘어선 점 등을 감안하면 A씨의 평가액이 타당하지 않거나 부적정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재판부는 설명했다.

국토부는 항소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A씨에 대한 검찰수사가 무혐의 처리되는 등 일련의 과정을 종합적으로 참고해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항소해도 이길 승산이 없다고 보고 포기한 셈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타당성조사에선 양쪽 모두 감정평가가 잘못됐다고 나왔고 적정가격도 중간가격을 내는 등 우리(국토부)가 보는 시각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며 "타당성조사 결과에 무리가 있다고 보고 시행사 측과 입주자 측을 똑같이 징계하지 않고 차등 처벌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징계수위가 적절했는지는 논란거리다. 징계기간을 떠나 '업무정지' 처분 자체가 감정평가사엔 치명적 '낙인'이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업무정지 징계를 받은 감정평가사엔 고객도, 회사도 일을 맡기지 않기 때문에 사형선고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