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동동에 갇힌 연쇄살인범! 실종사건은 왜 끝나지 않나

13년 전 오누이를 잃은 아버지는 방탕한 삶을 산다. 아이들은 익사로 추정, 시신도 찾지 못한 채 장례를 치른 상태. 아내는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다. 그런데 죽은 줄 알았던 사내아이가 살아 돌아왔다. 전염병이 걸린 채 고열로 죽어가며, 누이동생이 아직 살아있다는 얘기. 뜻 모를 모래, 잠, ‘샌드맨’만 되풀이한다.

샌드맨은 유럽에서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동화 속 인물이다. 밤에 잠 안 자고 보채는 어린이들 눈에 모래를 뿌려 잠들게 한다는, 우리로 치면 ‘망태 할아버지’ 정도? 샌드맨은 열 살 때 납치된 아이의 인식 속에 꿈처럼 남은 인물일까 아니면 실존 인물일까.


납치돼 죽은 줄 알았던 아이가 13년 만에 죽기 일보 직전 귀환하는 장면으로 시작한 책은 이 아이를 납치한 것으로 ‘추정돼’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갇힌 연쇄살인범 유레크 발테르를 바로 등장시킨다.

유레크는 한 여인을 관에서 ‘꺼내주는 듯한’ 상황에서 체포됐다. 하지만 이 여인 역시 오래전 행방불명된 이었기에 유레크는 ‘관에 넣는 듯한’ 행위를 했다는 근거로 연쇄살인범으로 낙인찍혀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갇힌다. 약물을 강제로 과다하게 투입받고 변호사 접견 권한도 박탈당한다. 어찌 보면 ‘범죄자’라 해도 보호받아야 할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셈이다.

죽었다고 여긴 사내아이가 살아 돌아오고 여동생이 살아있다는 얘기에 특별수사팀은 다시 꾸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작은 실마리조차 찾지 못한다.


살아 돌아온 아이가 말한 샌드맨으로 공범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 사건팀은 미모의 요원 사가를 악질범죄자로 둔갑시켜 유레카가 있는 정신병원에 감금한다. 범죄 현장이나 실마리, 혹은 ‘공범’ 정보를 알아내는 승부수를 던진 것. 하지만 유레카에 끌리는 그녀. 그녀의 신분은 곧 들통 나고 만다. 사가를 이용해 탈출에 성공한 유레카는 풀어 준 아이를 다시 ‘회수’하는 복수에 나선다.

새벽녘, 읽는 내내 무시무시한 스릴러 영화를 보는 듯 오싹함에 책장을 제대로 넘길 수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을 무렵엔 두려움의 종류가 달라져 있었다.

한 사람의 삶이 아주 사소한 이유로 인해 파괴되고, 더는 치유될 수 없는 정신적 외상을 입고 복수를 꿈꾸게 됐다면 누구의 책임일까. 진짜 두려움은 혹 지금 내가 누리는 작은 행복조차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불행하게 한 결과로 얻어진 거라면 어쩔 것인가. 나는 전혀 기억하지 못한 어린 시절 어떤 말 한마디나 행동 하나가 누군가를 끔찍한 상황에 부닥치게 했다면, 그래서 그 불행해진 이가 오랜 세월을 인내하며 내게 복수를 꿈꾸고 있다면.

반전은 역시 샌드맨, 그리고 범인의 복수 방식이다. 유레카가 체포 당시 관 속 여인을 ‘살려주고’ 있었던 것처럼, 범인은 납치한 아이들을 붙들고 있을 이유가 사라지는 순간을 기다린다. 진정한 복수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이 책은 유럽 9개 국가에서 소설 부문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500만부 이상 판매됐다. ‘최면전문의’ ‘악몽’ ‘방화목격자’에 이은 유나 린나 스릴러 시리즈의 네 번째 타이틀이다. 곧 모두 영화로 제작될 예정이라니 범죄 스릴러 마니아들은 환호하지 않을 수 없겠다.

◇ 샌드맨=라르스 케플레르 지음. 이정민 옮김. 오후세시.1만4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