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창업기관 떠나며 "창업가들 절실함이 부족"

오덕환 K-ICT 본투글로벌 센터장/사진제공=K-ICT 본투글로벌 센터

"내 역할은 다하고 떠난다"

오덕환 K-ICT 본투글로벌센터장이 이달 초 물러난다. 2013년 8월 센터 개관과 함께 취임한 지 꼭 2년 만이다. 그동안 500개 넘는 스타트업이 본투글로벌을 통해 해외 진출의 꿈을 키웠고 센터 이름은 미래 글로벌창업지원센터에서 K-ICT 본투글로벌센터로 바뀌었다.


K-ICT 본투글로벌센터는 박근혜 정부 슬로건인 '창조경제'를 떠받치는 한 기둥인 창업 관련 정부 산하 기관이자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을 지원하는 국내 유일의 정부 기관이다. 오 센터장은 센터의 초기 틀을 다지고 민간 전문가 집단의 컨설팅과 해외 데모데이 등 프로그램을 기획해 안착시켰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오 센터장은 미국 투자은행 제이무어파트너스, IDC 북아시아 대표, IDG 벤처스코리아 대표를 거치며 벤처 창업·투자·M&A(인수·합병) 등을 두루 경험한 민간 전문가다.

퇴임을 앞둔 그를 지난 24일 서울 상암동 K-ICT 본투글로벌센터 21층에서 만나 민간 전문가로서 정부 기관을 이끈 소감과 앞으로의 거취에 대해 들었다. 다음은 오 센터장과의 일문일답.


-스스로 퇴임 의사를 밝혔다. 이유는?

▷2년 전 미래부로부터 창업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민간 전문가가 창업 지원의 큰 그림을 그려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처음부터 '2~3년 동안 국가를 위해 힘써보자'는 생각으로 임했다.

실제로 지난 2년 동안 변호사, 회계사, 마케팅 전문가 등 국내 최고의 민간 전문가들을 영입해 컨설팅 프로세스를 구축했고 전 세계 9개국에서 해외 데모데이를 개최해 우리 스타트업들의 해외 진출을 위한 점을 찍는 작업을 마쳤다. 정부가 내게 맡긴 역할도, 스스로에게 부여했던 임무도 잘 마쳤다고 생각해 물러날 뜻을 밝혔다.

주변에서 "이렇게 좋은 잡(Job)을 왜 그만 두느냐"고들 말하지만 나는 IDC, IDG 벤처스도 그렇고 기틀을 다진 뒤에는 미련이 없다. 계속 머물면서 기득권도 누리고 개인적 여유도 즐길 수 있겠지만 나는 그런 것을 원하지 않는다.

-민간 전문가로서 정부 기관을 이끌었다. 어려움은 없었나?

▷공무원들 눈치를 보지 않으려 했다. 내가 센터 합류를 결정했던 이유는 '공무원들은 잘 모르는 창업 영역을 민간 전문가에게 맡겨 제대로 해보겠다'는 미래부의 생각에 동의해서 였다.

정부에서 주최하는 관련 회의 참석도 여러 번 거절했다. "나는 회의하러 온 사람이 아니라 일하러 온 사람"이라고 말했다. 센터장이 정부 회의에서 참석해 정부, 공무원들 말을 듣고 돌아오면 센터에 이를 전달하게 되고 결국 민간 전문가 재량이 아닌 정부 입김 대로 센터가 돌아갈 것을 우려했다.
다행히 미래부에서는 내게 많은 자율성을 부여했고 이점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

-지난 2년 간의 성과를 스스로 평가한다면?

▷2013년 당시 정부와 민간에서 개최하는 창업경진대회가 수십 개는 됐다. 이제 막 경진대회를 개최하고 창업 자금을 주고 스타트업들 실리콘밸리 견학 시켜주고 할 때였다. '정말 창업에 미쳐서 세상을 바꿔 보자'는 창업가들 보다 정부에서 주는 보조금 견학 프로그램을 노리는 '체리 피커'(Cher
ry picker)들, 여러 창업 대회를 전전하는 카피캣(Copy cat)들이 눈에 띄었다. 우리나라 경제를 한 단계 성장 시킬 만한 핵심 기술을 바탕으로 한 창업 기업이 드물었다. 이에 초기에는 ICT 기업들을 발굴하고 이들 기업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파악해 지원하려고 노력했다.

2014년에는 조금씩 기술 기업들이 발굴됐고 고객의 니즈를 제대로 파악한 B2C 기업들도 나타났다. 이 기업들을 더 좋은 기업으로 성장 시키기 위해 내부 역량을 성장 시켜줄 필요가 있었다. 기업들이 부족한 법률, 회계, 마케팅, 해외 IR 피칭법 등 역량을 민간 전문가 그룹을 통해 채우고 교육 시켰다.

최근 국내에 창업 보육센터, 액셀러레이팅 기관 등 지원 기관이 늘고 있는데 코워킹 스페이스(협업공간)만 제공하고 펀드만 지원 해준다고 기업이 성장하는 건 아니다. 기업 역량이 튼튼하지 않은데 펀드만 지원해주면 오히려 모럴 헤저드(도덕적 해이)가 발생해 기업이 망가질 위험이 있다.

올해 상반기에는 육성 기업을 뽑는 기준을 엄격히 해 소수 정예 기업에 집중 투자하기로 방향을 틀었다. 함량 미달인 기업들은 거르고 될성 부른 기업들만 모아 멤버십 제도를 만들고 이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집중적으로 지원 해줬다.

결론적으로 지난 2년 동안 정부에서 요구한 '민간 전문성'을 발휘, 센터의 창업지원 프로세스를 잘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현 국내 창업 생태계 및 정부의 창업 지원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창업 붐이 일고 있다고 본다. 한국만의 특이한 상황은 아니다. 특히 핀테크, IoT 분야는 전 세계 창업가들이 서로 교류하면서 활발하게 성장하고 있어 긍정적이라 생각한다.

다만 우리나라 생태계는 현재 무료 창업 공간은 넘쳐 나는데 이를 채우는 사람이 부족한 게 문제다. 취업준비생 가운데 몇십 만 명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도서관과 창업 공간 사이의 간극을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학생 때부터 앙트레프레너십(기업가 정신)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학생들이 취직이 아니더라도 창업이라는 다른 길이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을 뒤엎어 보겠다'는 창업자들이 이들 창업 공간으로 몰려들어 활성화 됐으면 좋겠다.

이 맥락에서 '정부가 꼭 창업지원센터부터 한번에 전국 17개 도시에 열었어야 했나'라는 아쉬움도 있다. 하드웨어는 근사한데 이를 채울 사람과 창업 문화는 아직 덜 여물었다. 전 세계 어디에도 이렇게 좋은 시설의 창업 공간은 본 적이 없다. 싱가포르의 경우 창고를 개조해 만든 창업 공간 '블락71'(Block 71)를 하나하나 차례로 확장해 가고 있다.

우리 창업가들에게도 '절실함'이 필요하다. 중국 중관촌에서 본 중국 창업가들은 창업에 미쳐 있는 절실한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자세부터 달랐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차려 놓아도 입맛 없는 사람은 먹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가 막을 내리면 창업 붐도 끝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어떻게 보나.

▷창조경제, 창업은 다음 정권에서도 계승·발전 시켜야 나가야 한다. 창업은 한 정권의 업적을 떠나 앞으로 우리 민족이 먹고사는 문제, 생존이 달린 문제다.

지난 20년 간 움츠렸던 일본 경제가 다시 깨어났고 중국은 용트림을 쳐가며 발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둘 사이에 끼인 '넛 크래커' 상태다. 새로운 성장 동력이 필요한데 대기업이 이를 할 수 있겠나? 스타트업, 벤처기업이 답이다. 현 정부 지나고 다음 정부, 그 다음 정부에서도 연속성을 가지고 창업 부문을 지원하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본다.

-후임 센터장에게 바라는 점은?

▷짧은 기간이었지만 지난 2년 간 센터의 기초를 잘 다졌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이 기틀을 바탕으로 기업들의 수준을 더욱 끌어 올리고 활발하게 글로벌 진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 자리를 연봉이나 향후 공직으로 나가기 위한 창구로 기대하고 와서는 안된다. 국가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적극적으로 선봉에 서고 정부에 가이드라인을 줄 수 있는 오너십(주인의식)을 가진 사람이 오길 바란다.

-앞으로의 거취는?

▷그동안 센터라는 제도권에서 창업 기업들을 도왔다면 앞으로는 다시 비 제도권으로 돌아가 창업 기업을 도울 예정이다. 스타트업들의 엑시트(Exit)를 도울 수도 있고 네트워크를 구축해 도울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