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조 규모에 상응하는 국민연금 지배구조 필요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국민연금기금의 적립금 규모가 500조원을 넘어섰다. 노르웨이정부연기금(GPFG)가 성격이 상이한 국부펀드임을 감안하면 일본공적연금(GPIF)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번째 큰 연기금이 됐다. 이 거대 기금을 어떻게 운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이는 구체적으로 연기금 지배구조의 문제다. 연기금의 지배구조는 일반적으로 최고의사결정기구와 실무집행조직으로 분리돼 있다. 국민연금의 경우 기금운용위원회와 국민연금공단 산하 기금운용본부가 각각 이에 해당한다. 현재 추진되는 개편안의 핵심 내용은 사용자(기업)와 근로자(노조), 지역가입자 등 가입자 대표로 구성된 기금운용위를 자산운용 전문가 집단으로 전환하고 기금운용본부를 공사 형태로 독립시키자는 것이다.

정부가 논란을 무릅쓰고 하필 지금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저성장·저금리 환경에서 500조원의 자산을 고금리 시대의 50조원처럼 운용할 수는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국민연금의 현재 지배구조는 기금 규모가 50조원에도 미치지 못하던 시절에 만들어졌다. 현재 500조원 규모의 기금은 2040년 전후로 200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 기금이 양호한 수익률로 안정적으로 운용돼 왔으니 앞으로도 현재와 같은 운용 기조를 유지하자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문제는 개편의 방향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지배구조 개편의 방향은 운용의 효율성 제고다. 이는 위험을 무시한 단순한 수익률 제고와는 다르다. 자산운용에서 수익률과 위험이 함께 간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운용의 효율성 제고는 위험관리와 수익률 제고를 함께 고려하려는 노력으로 이해돼야 한다.

그렇다면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그만큼 위험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은 국민연금기금이 직면하고 있는, 그래서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위험이 무엇인가에 달려 있다. 이를테면 약세장과 강세장이라는 주식시장의 출렁임으로 기금 적립금이 일시적으로 줄었다 늘었다 반복하게 된다고 해서 국민연금이 위험하게 운용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30년 이상의 장기투자자인 국민연금 입장에서 단기적인 시장위험은 의미가 없거나 감내할 수 있는 위험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대응해야 하는 실질적인 위험은 시장에서의 구조적인 위험 프리미엄(위험을 감수하는 대가로 요구하게 되는 초과 수익률) 하락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위험 요인을 사전에 파악하고 관리하는 게 자산운용 전문가의 역할이다.

현재의 논의가 기금운용본부 독립을 넘어 기금운용위 재편에 대한 논의까지 나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자산운용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적자산배분은 기금운용위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는 기금이 달성하게 될 총수익률이 주식시장에서 좋은 종목을 어떻게 잘 고르느냐보다는 주식이라는 자산군에 얼마의 자금을 배분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많은 이들이 위험자산 비중의 확대와 액티브 운용의 강화를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좀 더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시장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것과 그 시장에서 다른 투자자보다 높은 수익을 내도록 운용하겠다는 것은 의미가 다르다. 통계적으로도 지속적으로 시장을 이기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이를 근거로 전문가의 자산운용이 수익률 제고를 담보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것 역시 논리적 비약이다. 기금운용본부는 물론, 기금운용위의 전문성 강화는 기금 500조원 시대에 필수적인 사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