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동제약 지분처분, '실리'보다 '의리' 택한 녹십자

허일섭 녹십자 회장(왼쪽)과 윤원영 일동제약 회장.

녹십자 (111,500원 ▼500 -0.45%)가 보유 중이던 일동제약 (8,700원 ▲10 +0.12%) 지분을 파는 과정에서 일동제약과 신의를 지켜 화제다. 지분 매각계약 이후 일동제약 주가가 급등, 녹십자가 계약파기에 따른 위약금(매각금액의 10%)를 감수하고 계약을 파기했다면 더 큰 수익을 올릴 기회가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녹십자는 기존 계약대로 주식을 매각했다.

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녹십자는 일동제약 보유 지분 29.36%를 일동제약 현 경영진에 1399억원(1주당 1만9000원)에 모두 매각했다.


녹십자는 5월29일 계약일로부터 2개월이 되는 날 또는 당사자들이 달리 합의하는 그 이전의 날에 처분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실제 두 회사 간의 거래가 지난달 29일 이뤄졌다.

녹십자가 일동제약과 주식매각 계약을 체결한 날인 5월29일 일동제약 주가는 2만2300원(종가기준)으로, 주식 매각가격(1만9000원)은 이 보다 15%가량 할인됐다. 녹십자의 일동제약 보유물량이 전체 주식의 30%에 육박, 녹십자 매도물량이 시장에 나올 경우 주가가 급락할 수 있기 때문에 15% 할인 가격은 적정한 것으로 평가됐다. 일동제약도 녹십자 보유지분을 인수할 경우 경영권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어 양측 모두 만족할만한 계약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7월에 일동제약 주가가 급등하면서 녹십자가 더 큰 매각 차익을 올렸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제약·바이오주 랠리가 시작되면서 7월20일 일동제약 주가는 52주 최고가인 4만400원(종가기준)을 기록했다. 당초 맺은 주식 매각금액보다 주가가 두 배가 넘게 된 것이다.


녹십자가 보유했던 일동제약 지분가치도 1399억원에서 2973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당시 제약바이오주식에 투자가 몰리면서 녹십자가 일동제약 주식을 시장에 내놓더라도 물량이 소화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녹십자가 위약금을 물고 계약을 파기할 경우 장내매각을 통해 더 큰 수익을 올렸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녹십자 관계자는 "계약대로 매각을 이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좋은 취지로 계약이 체결됐는데 작은 이익을 위해 번복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일동제약에 739억원을 투자한 녹십자는 89%의 투자수익률을 기록했다. 녹십자는 660억원의 투자수익금을 글로벌 사업에 쓸 계획이다.

한편, 녹십자가 보유했던 일동제약 지분 29.36%중 20%는 사모펀드 운용사인 'H&Q Korea'의 3호 PEF가 출자한 썬라이즈홀딩스가 인수하기로 했다. 나머지 9.36%는 또 다른 운용사인 '인베스트썬'이 인수한다.

썬라이즈홀딩스가 인수한 지분은 향후 경영진과 의결권을 함께하는 조건으로 장기간 공동보유하게 됐다. 윤원영 일동제약 회장 측이 사실상 54.49%의 지분을 확보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일동제약 관계자는 "경영권을 안정화하는 한편 보다 체계적이고 투명한 경영활동이 가능해져 기업가치를 제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