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까지 2년" 열혈 베테랑 형사의 '은행강도' 체포기

최근 잠원도 새마을금고 강도 사건을 처음부터 끝가지 주도한 서울 서초경찰서 형사과 김성태 강력4팀장./사진=이재윤 기자

지난달 20일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벌어진 새마을금고 강도사건. 순식간에 2400만원을 빼앗아 오토바이로 도주한 범인은 좀처럼 단서를 잡기 어려웠다.

공개수배까지 했지만 도움이 될 만한 제보도 좀처럼 들어오지 않았다. CCTV(폐쇄회로TV)가 유일한 열쇠였다. 경찰이 뒤진 CCTV만 무려 2442시간 분량이었고, 결국 사건 발생 7일째인 지난달 26일 피의자 최모씨(53)의 검거에 성공했다.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여름, 피의자 동선을 지나는 수천개의 CCTV 자료 확보와 분석, 실제 검거 현장까지. 지난했던 수사의 처음과 끝을 지킨 이는 서울 서초경찰서 내 최고 베테랑인 김성태 형사과 강력4팀장(58)이었다.

김 팀장은 이번 사건에 대해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처음엔 단서가 너무 없어 참 답답했다"고 말했다. 특히 용의자를 특정하기 어려웠던 사건 초기 상황을 떠올리며 "특히 범행 시간도 2분 정도로 짧고 현장에 지문이나 CCTV등 인상착의를 확인할 수 있는 아무런 단서가 없어 수백개의 CCTV를 확인해, 범인이 누구인지 빠르게 찾아내는 게 수사의 관건이었다"고 전했다.

수사팀은 사건 당일 피의자 최씨가 범행 현장인 잠원동 새마을금고에 도착하기까지의 시간을 거꾸로 추적했다. 최씨가 어디서 출발했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밝혀내면 쉽게 범인을 찾아낼 수 있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만만치 않았다. 범인이 헬멧을 쓰고 있었던 탓에 정확한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키와 걸음걸이 등의 형태만으로 뒤를 쫓았다. 끈질긴 추적 끝에 최씨가 헬멧을 벗고 얼굴을 드러낸 곳은 범죄 현장에서 30㎞가량 떨어진 경기도 성남의 한 C대학병원이었다.

CCTV 분석은 이곳부터 다시 시작됐다. 범인이 병원으로부터 범행 장소까지 이동한 동선을 샅샅이 뒤졌다. 장마와 무더위 속에서 동선에 설치된 수백여 개의 CCTV를 밤낮을 새우며 뒤졌다.

김 팀장은 "하늘만 쳐다보고 도로를 다니면서 CCTV가 있는 곳은 전부 찾아가 확인했다"며 "단서도 없이 하루 종일 용의자가 탄 오토바이 형태만 보고 쫓아 다니다 보니 하루하루 입이 바짝바짝 마를 정도였다"고 말했다.

사건발생 4일째인 23일 정확한 얼굴은 파악되지 않았지만 병원 내 CCTV를 통해 10여명 안팎으로 용의자를 추려 냈고, 6일째인 25일에야 용의자의 얼굴이 뚜렷하게 포착된 CCTV가 과천 경마장에서 나왔다. 범행 3일 전인 17일 경마장으로 들어가는 최씨의 얼굴과 마주한 것. 수사팀은 환호성을 질렀다.

병원 진료 기록과 운전면허 등을 통해 인적사항을 확인한 후 최씨가 최근 통화를 한 기지국의 반경 2㎞를 샅샅이 뒤진 끝에 거주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14시간의 잠복이 이어졌고, 김 팀장 역시 그 자리에 있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집 밖으로 나온 최씨를 붙잡았다. 김 팀장은 "긴급체포를 하려니까 몸을 벌벌 떨면서 아무 말도 못하더라"며 "범행 과정의 동선까지 정확히 얘기하니 저항 없이 순순히 자백했다"고 전했다.

김 팀장은 서초경찰서 내에서 연배로 '넘버2'의 최고참이다. 1997년부터 형사로 지내며 잔뼈가 굵었다. 그러나 여전히 김 팀장은 사건 현장을 떠나지 않는다.

이번 사건에서도 매일 새벽부터 자정을 넘은 시각까지, 때로는 밤을 새워 근무하며 7일간의 수사에 참여했다. 좀처럼 견디기 힘든 강행군이었지만, 누구 못지않은 강철 체력과 열정에 '조카뻘' 후배 형사들도 혀를 내둘렀다는 후문이다.

정년까지 2년 남짓. 그러나 여전히 몸을 사릴 생각이 없다. 이번 사건 해결의 공로를 인정받아 '특진'의 영광을 누렸지만, 과거 20여년 동안의 생활과 다름없이 열심히 일한 덕에 얻은 '운'일 뿐이라는 자평이다. 다만 김 팀장의 정년 후 계획은 확고하다. 지금까지와 달리 아무것도 하지 않기가 그가 꿈꾸는 미래다.

"은퇴한 다음에요? 정말 아무 것도 안 할 겁니다. 지금까지 일한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그런데 얼마 전에 안사람에게 '정년 마치면 그 동안 한 번도 못 갔던 해외여행을 가자'고 말했더니, 영 믿지 않는 눈치더라고요. 그래서 목표가 하나 생겨버렸네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