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사의 두 시선 '아리랑' VS '명성황후'…작품성은?

뮤지컬 '아리랑'의 한 장면. /사진제공=신시컴퍼니

광복 70주년을 맞아 최근 개막한 두 개의 창작 역사 뮤지컬이 열띤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하나는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을 원작으로 일제시대를 조명하는 동명의 뮤지컬이다. 올해 초연으로 오는 9월5일까지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열린다.

다른 하나는 올해 20년째 꾸준히 이어온 창작 뮤지컬계의 고전, 이문열의 '여우사냥'을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 '명성황후'다. 1995년 초연을 시작했으며 오는 9월10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다. 광복을 맞기까지 일제 치하에서 설움을 당한 우리 민족의 삶을 그린 두 뮤지컬을 비교해봤다.

◇'아리랑', 탄탄한 원작의 힘에 기댄 서사…과도한 애국주의 '불편'

'아리랑'은 광복 50주년이던 1995년 완간된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을 원작으로 한다. 비록 앞뒤 이야기를 상당부분 쳐내긴 했지만 12권짜리 소설을 3시간도 안 되는 시간에, 한정된 공간 안에 풀어놓는다.

'아리랑'에서는 양치성(김우형·카이)과 수국(윤공주·임혜영)의 시대로 인해 엇갈린 삶의 이야기가 빛난다. 원작 속 캐릭터와 서사가 가진 힘이다. 다른 어떤 외부조건이 아닌 시대만이 이러한 비극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의 삶을 통해 보여준다.

시대적 배경이 일제시대인만큼 '아리랑'은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내용이 많다. 우리에게 익숙한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로 시작하는 아리랑 가락이 뮤지컬이 진행되는 2시간40분(인터미션 포함)간 끊임없이 울려 퍼진다. 나라를 잃은 설움을 당하며 등장인물들은 끊임없이 조국의 소중함을 외친다.

그러나 짙은 애국심의 강요가 되레 애국심을 반감시킨다. 진짜 슬픈 이야기라면 극 중에 눈물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관객이 스스로 느끼고 가슴 저리게 만들어야 하는 법. 연출자가 원칙으로 삼았다는 이 '애이불비'(哀而不悲)가 애국심에 있어서도 적용됐더라면 더 좋았을 법했다.


논리적인 설득과정 없이 '나라를 사랑해야 한다', '일본놈은 나쁜놈이다'는 이야기를 극 내내 듣다보니 마지막에는 '왜?'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그 시대를 겪지 못한 젊은 세대를 설득하는데 실패하는 듯한 과한 애국주의 코드가 아쉽다. 6~13만 원, 02-577-1987.

뮤지컬 '명성황후'의 한 장면. /사진제공=에이콤인터내셔날

◇ '명성황후', 비극에 공감하는 연기와 노래…가사 전달력 아쉬워'

'명성황후'는 역사적 상황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과거의 비극에 공감하고 거기에 동참하도록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 역사 뮤지컬로서 20년을 이어질 수 있었던 힘이다.


명성황후의 시해를 그린 뮤지컬이지만 무조건 명성황후의 입장을 옹호하지 않는다. 흥선대원군의 입장도 명성황후의 입장도 모두 조금씩 이해가 되도록 그렸고 이로 인해 더욱 시대적인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발전의 속도가 빨랐던 서양이 과학기술을 앞세워 나라의 문을 열라고 강요하는 상황에서 바로 옆 나라인 중국과 일본의 거센 압박도 이어진다. 문호를 개방하면 그들의 꼭두각시가 되겠지만 열지 않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다. 외부 위협에 둘러싸인 상황에서 내부 의견이 분열되면서 결국 모두가 무너진다.

무대장치, 연기, 노래 등 모든 것이 웅장하고 아름다웠지만 단 한 가지 부족한 가사전달력이 아쉬웠다. 인터미션 시간에 밖에 나온 관객들의 웅성거림 속에서도 대사전달력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가 될 정도였다.

연출 과정에서 가사 전달력보다 성량이나 노랫소리의 아름다움에 치중했던 것이 스토리 이해에 장애물로 비쳐졌다. 노래 아닌 대사가 거의 한 줄도 없는 뮤지컬로서 이 단점은 치명적이다. 이 점만 아니었다면 '역시'라는 감탄사를 들을만한 작품이다. 6~13만 원, 02-2250-5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