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여제' 박인비, 세리키즈서 그 자신 역사로

박인비 선수 /사진제공=KB금융

2일 브리티시 오픈 우승으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에서 커리어 그랜드슬램(시즌에 관계 없이 4개 메이저대회 석권)을 달성한 박인비에게는 더 이상 ‘제2의 ~’ 라는 별칭이 붙지 않는다. 그는 세계 여자골프의 현존하는 전설(미국 스포츠전문 매체 ESPN 평가)이고 여전히 전성기인 젊은 골프 여제다.

스무살(만 19세) 나이에 US여자오픈(2008년)에서 LPGA(미국여자프로골프) 메이저 대회 첫 우승을 할 때 박인비에게는 세리키즈라는 별칭이 붙었다. 1998년 박세리가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는 모습을 보고 골프를 시작했다는 뜻에서였다.

2012년 시즌 상금왕과 최저타수상을 석권하고 2013년 세계랭킹 1위 자리를 가져갔을 때 그에게는 신지애가 이룬 업적을 재연했다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하지만 커리어 그랜드슬램 이후로는 그가 이루게될 모든 업적에는 박인비만이 개척할 새로운 길들이 열리게 된다. 그가 이뤄내면 경쟁자들이 도전하게 되는 것이다.

이날 경기도 역전 우승으로 장식됐다. 골프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명승부로 평가받을 이날 그는 마지막날 7언더파를 몰아치며 앞서가던 경쟁자를 극적으로 제쳤다. 박인비는 2번홀(파4)과 3번홀(파5)에서 연속 버디를 잡았지만 4번홀(파3)과 5번홀(파4) 연속 보기로 '커리어 그랜드 슬램'에서 멀어지는듯 했다.

하지만 경기 중반부터 세계 랭킹 1위의 저력을 뿜어내며 7번홀(파5)부터 9번홀(파4)까지 세 홀 연속 버디를 기록하며 대역사의 시작을 알렸다.

박인비는 경기후 인터뷰에서 "2, 3번홀 연속 버디 후 4, 5번홀 연속 보기를 범하면서 '이번에도 힘든건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긍정적으로 경기에 임한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내 후반 첫 10번홀(파4)에서도 버디를 잡아내며 선두 고진영을 바짝 뒤쫓았다. 대미는 14번홀(파5)이었다. 박인비는 5m 이글 퍼트를 성공시키며 고진영을 한타 차로 압박했다. 마침내 박인비는 16번홀(파4)에서 버디를 잡아내며 13번홀에서 보기를 범한 고진영을 제치고 단독 선두로 올라선 후 내려오지 않았다.

박인비는 메이저 7승을 포함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통산 16승을 기록했다. 박인비가 브리티시여자오픈을 제패하며 역대 7번째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것은 2003년 애니카 소렌스탐(스웨덴, 메이저대회 10승 기록) 이후 12년 만의 대기록이다. 아시아 선수로는 남녀를 통틀어 가장 먼저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는 업적도 따라붙는다.

박인비는 아들ㆍ손녀와 함께 ‘3대 골프’를 치는 게 소원이었던 할아버지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으며 열 살때부터인 1998년 골프를 시작했다. 1년 만에 전국 대회 우승을 하는 등 남다른 소질을 보였다.

골프입문 10년 후인 2008년 박인비는 US오픈에서 대회 최연소 우승자 기록을 세우며, 한국인으로는 다섯 번째로 LPGA 메이저 퀸에 등극했다. 하지만 그뒤로 수년간 뚜렷한 성과를 못 내다가 5년의 세월이 흐른뒤인 2013년 LPGA 시즌 메이저 대회 3회 연속 우승을 기록했다.

27년 21일만에 통산 7개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하며 같은 기록을 보유한 남녀 프로골퍼 가운데 3번째로 어린 선수에 이름을 올린 그는 오는 9월 에비앙 챔피언십까지 제패할 경우 5대 메이저 대회를 모두 석권하는 ‘슈퍼 그랜드슬램’까지 이루게 된다. 박인비는 2012년에 에비앙 대회에서 우승했지만 당시에는 이 대회가 메이저 대회가 아니었다.

LPGA 역사에 남을 대기록을 세운 박인비는 이날 인터뷰를 통해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쁘다"며 "커리어 그랜드슬램 달성 이외에 다른 목표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빠른 시일에, 빠른 나이에 이렇게 큰 꿈을 이루게 돼 영광스럽다"고 마지막 소감을 밝혔다. 지난해 스윙코치인 남기협씨와 결혼하며 더욱 안정감을 찾게 된 그의 전성기는 여전한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