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포트 쓰지 말아라…애널리스트 '수난시대'

자본시장의 꽃이라 불리는 증권사 리서치센터가 내놓는 리포트가 급감하고 있다. 지난달 1일 ‘시장질서 교란행위 규제’가 새롭게 시행되면서 ‘본보기 처벌’이 시작될 것으로 보고 몸을 사리는 애널리스트들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사실상 ‘개점휴업’에 들어간 애널리스트들 때문에 펀드매니저들도 투자할 종목을 선정하는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가장 큰 피해자는 개인 투자자들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개인 투자자들이 유일하게 ‘공신력 있는 투자정보’를 얻을 수 있는 리포트가 턱 없이 부족해졌다는 것이다.

◇개점휴업 들어간 리서치센터=3일 에프앤가이드 등에 따르면 증권사 리서치센터가 지난달 발간한 리포트는 총 7385건으로 지난해 7월(7866건)과 비교해 481건(6.1%)이 줄었다.

이 가운데 시황전망이나 매크로 경제, 채권, 환율 등을 제외한 종목과 관련한 리포트는 2455건으로 전년 동월 대비 50건이 감소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실제 발간된 종목 리포트는 100건이 넘게 감소했다”는 말이 나온다.

증권사 관계자는 “종목 리포트라 해도 개별 종목에 국한된 것과 하반기 및 월간 산업분석에 포함된 것들이 있다”며 “지난해에 비해 올해는 산업리포트가 늘면서 종목리포트 숫자가 실제 발간된 것보다 다소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7월 들어 시장질서 교란행위 규제가 도입되면서 일부 증권사 리서치센터에서는 ‘일단 소나기는 피하라’며 신규 리포트를 자제한 곳이 상당수”라며 “코스피 대형주보다는 중소형주를 대상으로 하는 스몰캡 부문의 리포트가 크게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와이즈에프앤에 따르면 올해 교보증권의 종목별 투자의견(등급 미제시 포함)은 지난 6월 309건에서 7월 295건로 줄었고 같은 기간 KTB투자증권은 192건에서 183건으로 감소했다. 대신증권은 213건에서 204건으로, 한화투자증권은 85건에서 76건으로 각각 줄었다. 이 밖에 이베스트투자증권, LIG투자증권, 교보증권 등도 리포트 건수가 위축됐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기업들이 탐방을 거절하는 경우도 있고 탐방기회가 생겨도 일단 보류하는 애널리스트들이 많다”며 “상황이 이렇다 보니 리포트 작성보다는 세미나에 시간을 많이 보내는 편”이라고 말했다.

◇“일단 본보기 처벌 피하자”=이처럼 애널리스트들의 활동이 크게 위축된 것은 지난달 새로 도입된 ‘시장질서 교란행위 규제’ 때문이라는 말이 많다.

이번 규제는 미공개 중요 정보를 간접적으로 듣고 투자에 나선 사람이나 2차, 3차 정보 전달자도 시장질서 교란행위자로 간주해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이전에는 1차 정보 이용자만 처벌 받았다.

애널리스트가 기업에서 들은 정보를 증권사 직원에게 전달하고 이 직원이 지인들에게 이 정보를 전했는데 지인 가운데 한 명이 이 정보로 투자 수익을 올렸다면 3차 정보 이용자인 지인은 물론 단순 정보 전달자인 증권사 직원과 애널리스트까지 처벌 받는다.

다만 애널리스트와 증권사 직원은 단순 정보 전달자일 뿐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부당이익을 거두진 않은 만큼 실제 투자 수익을 올린 3차 정보 이용자보다는 가벼운 처벌을 받는다.

어려움은 이 뿐만이 아니다. 최근 금융감독원과 금융투자협회가 ‘매도 리포트’를 늘리라고 압박하면서 실제 현장의 분위기는 냉랭하게 가라 앉았다.

최근 한 애널리스트가 상장기업에서 협박에 가까운 항의를 받는 일이 있어 해당 증권사가 발칵 뒤집힌 일이 있었다. 이 애널리스트는 한 기업에 대해 오너 중심의 지배구조와 의사결정 등이 취약하다며 목표주가를 기존보다 20% 가량 낮춘 매도 리포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해당 기업 IR(투자자관계) 담당자가 리서치센터를 찾아와 “오너와 관련한 내용이 나올 경우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에 들어갈 것”이라고 엄포를 놨고 결국 리포트 내용은 대폭 수정됐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애널리스트 리포트는 이미 지난 6월부터 크게 줄었고 이제는 식사하며 투자의견을 주고받는 자리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라며 “그나마 전문가들은 상황이 괜찮지만 개인 투자자들은 정보기근이 점차 심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