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포통장과의 전쟁… 100만원의 경제학

'100만원으로 낮춰라.'

대포통장과의 전쟁을 선포한 금융감독원이 대포통장 근절을 위한 조치들의 금액 제한을 100만원으로 맞추고 있다. 150만원 안팎에 거래되는 대포통장 가격보다 낮추기 위한 조치다. 금융사기범들이 사기 수입으로 '대포통장의 원가'(?)도 건지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것.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오는 9월 2일부터 은행 자동화기기(CD, ATM)의 지연인출제도 적용 금액이 '300만원 이상' 이체에서 '100만원 이상'으로 낮아진다. 100만원 이상 금액은 인출뿐만 아니라 재이체도 30분간 할 수 없게 된다.

지연인출제도는 이체된 금액을 자동화기기에서는 30분간 인출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다. 종전엔 10분이었지만 올 상반기에 30분으로 확대됐다. 보이스피싱 등 금융사기범들이 대부분 자동화기기에서 인출해 가는 만큼 30분간 인출을 막아놓으면 그 시간 동안 피해자가 신고를 통해 피해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A은행의 자체 조사 결과 30분 지연인출시 피해의 절반 정도를 막을 수 있었다.

은행들이 지연인출 적용 대상 금액을 300만원 이상에서 100만원 이상으로 낮추기로 한 것은 대포통장의 원가를 감안한 것이다.


인터넷 등을 통해 음성적으로 거래되고 있는 대포통장의 가격은 현재 150만~200만원 정도다. 지연이체 기준이 300만원 이상일 때는 사기범들이 범죄수익을 300만원 미만으로 쪼개 이체한 후 인출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100만원 미만으로 쪼개야만 인출이 가능해진다.

가령 1000만원을 30분 이내에 인출하기 위해선 300만원 아래로 쪼개 송금할 수 있는 4개의 통장이 필요했지만 앞으로는 10개 이상의 통장이 필요해지는 셈이다. 하지만 10개의 통장을 확보하는데 1000만원 이상이 들어 사기범들에겐 '범죄의 경제성'(?)이 없어진다는 것. 금융당국 관계자는 "지연인출 기준을 100만원으로 낮추면 금전 쪼개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져 금융사기조직의 운영이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여기에 대포통장 신고포상금마저 5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올리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물론 대포통장 근절 대책으로 인해 피해자가 직접 돈을 인출해 가져오게 하는 등 범죄조직의 수법이 날로 기상천외해 지고 있지만 범죄수익의 최종 통로인 대포통장 사용은 갈수록 어려워지는 셈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신규계좌 개설이 어려워지면서 미사용통장을 대포통장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장기미사용 통장에 대해서도 거래제한 조치가 시행돼 서 금융사기 조직들이 보유한 대포통장이 고갈돼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지난해부터 신규계좌 개설시 90가지에 달하는 의심거래에 대해 계좌개설 심사를 강화했고 장기미사용계좌에 대해선 자동화기기를 통한 1일 인출한도를 70만원으로 제한한 바 있다.

금융당국은 지연인출제도 강화 등에도 불구하고 대포통장이 줄어들지 않을 경우 자동화기기에 안면 인식 시스템을 탑재, 얼굴을 가리면 인출할 수 없는 자동화기기의 도입도 검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