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돌린 독립운동가 아버지와 출세한 아들의 눈물

이승만 정권으로부터 '공산당 부역자'로 몰려 총살당했던 독립운동가 고 최능진 선생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2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입구에서 최 선생의 아들 최만립 씨가 소감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조성봉 기자<br>

독립운동가였지만 부역죄로 처형당했던 최능진 선생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아들 최만립(81)씨는 특별한 고마움을 표시했다. 정권 차원의 탄압을 받은 독립운동가 집안이면서도 아버지와 사실상 척을 졌던 정권하에서 공직에 진출한 최씨의 이력이 어우러지며 이같은 사례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능진 선생의 아들들은 최만립씨(전 대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 외에도 2013년 별세한 최필립 전 정수장학회 이사장도 있다. 이들은 모두 고위직을 거쳤다.

최필립 이사장은 외무부 소속으로 청와대에 파견돼 있던 78년부터 1년여 동안 당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던 박근혜 담당 공보비서관을 지냈다. 79년 10·26 뒤 외무부로 복귀해 정년퇴직했으며, 2002년 박근혜 대통령이 당시 한나라당을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만들었을 때 운영위원으로 참여한 측근 중 측근으로 꼽힌다. 2012년 대선 전후로는 정수장학회가 지분을 갖고 있는 MBC의 지분 매각 문제를 깊숙하게 논의한 것으로 파문을 일으켰다.

최 이사장의 동생인 최만립씨는 스포츠계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하며 대한체육회 부회장, 대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 남북 체육회담 한국대표 등으로 활동했다. 특히 86 서울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2002 한일월드컵 유치활동의 중심에서 뛰었다.

최씨는 박근혜 대통령과도 각별한 인연이 있어 2012년 대선 전 무궁화사랑운동본부 회장 자격으로 출판기념회를 핑계로 선거운동기간 전에 박근혜 대통령을 위한 불법 선거운동을 벌인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기도 했다. 형제가 충심으로 모셨던 박근혜 대통령의 집권기에 이들은 간첩.부역자로 몰렸던 아버지의 한을 푸는 60여년만의 선물을 받은 셈도 됐다.

이들의 부친인 최능진 선생은 정부 수립 전후 경찰에 투신, 경무부 수사국장을 맡았다가 1948년 제헌 의회 선거에서 서울 동대문 갑구에 이승만에 맞서 출마하기도 했다. 사실상의 무투표 당선을 기대했던 이승만 대통령은 이 일을 언짢아했고 법원은 이후 이를 빌미로 정부 수립 후 쿠데타를 일으키려 했다는 죄목으로 최능진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뒤 인민군에 의해 풀려난 최씨는 서울에서 정전·평화운동을 벌이다 이승만 정권에 의해 친북 활동가로 몰려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951년 2월 총살당했다.

독립운동가인 유림 선생과 5.16쿠데타 과정에서 혁명 주체로 참여했던 유원식 육군 준장 부자의 얘기도 있다.

유림 선생은 항일독립운동기의 유명한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 운동가였다. 민족주의 공산주의 그룹과 함께 항일독립투쟁의 중요한 축을 담당했던 아나키스트 그룹에는 유림 외에도 단채 신채호 선생 등이 있다.

유림 선생은 항일 운동 과정에서 감옥에 갇히면서 가족들은 자연히 제대로 돌보지 못 했다. 이 때 외아들 유원식은 “아버지를 감옥에서 내보내주겠다”는 일제의 회유에 넘어가 일제 괴뢰 정부인 만주국 군대에 지원했고 아들과 아버지는 영원히 거리를 두는 사이가 됐다.

유림은 1945년 해방된 조국에 돌아왔지만 죽을 때까지 일제에 부역한 아들을 보지 않았다. 아버지 때문에 방황하던 유원식은 아버지 친구들의 권유로 조국의 군대에서 장교가 됐지만 마찬가지였다. 아버지 유림은 유원식이 5.16 거사 참여에 골몰하던 시기인 1961년4월에 별세했다. 유림은 아들이 일제에 이어 또다시 쿠데타 주체세력에 가담하는 것은 보지 않았다.

이밖에 사안은 다소 다르지만 김구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과 김신 전 공군참모총장의 사례도 있다. 김구는 독립운동의 양대 거두이면서 대표적인 정적으로 꼽히던 이승만 집권기에 육군 장교인 안두희에 의해 암살됐다. 김신 전 총장은 아버지와 함께 임시정부, 중국군 등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펼치다 정부수립 후 국군 창설에 관여했다.

이후 6.25 당시에는 전투기를 직접 조종하며 전투에 나섰고 이후 공군 참모차장, 총장까지 지냈다. 5.16때는 군사혁명위원회 위원과 국가재건최고회의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독립운동가 아버지와 해방 이후지만 정통성이 부족한 정권에서 출세한 아들과의 사이에는 비극도 있었다. 6.25전쟁 당시 전투에 참여한 유원식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만큼 아버지를 보고 싶다는 생각에 마지막으로 찾아갔다. 그때 광경을 본 한 지인은 “아버지는 등을 돌리고 아들을 쳐다보지 않았고 아들은 끝내 부친의 뒷모습만 바라보다 울며 그냥 돌아가고 말았다”고 증언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