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권 "노동현장 개혁 흐름, 중앙서 전혀 못 담아내"

-"현장은 이미 노동개혁 사이클, 한국노총 지도부-중앙정부 소통부재 책임 커"
-"해고 법제화 경영계 요구는 사회경직 우려..법원 판례 따르는게 현명"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31일 노동개혁 협상 테이블과 현장 간 괴리를 지적했다. 부산 노사민정이 주최한 일자리 창출 협약식 참석 차 부산연안여객터미널에서 배에 오른 참이었다. 이날 부산 노사민정은 하반기만 2806명을 고용하는 고용협약식을 맺었다. 같은 시간 서울에서는 내달 7일로 예정된 노동개혁 대토론회 의제 선정을 위한 노사정위 간사회의가 노동계와 정부의 대립 끝에 사실상 무산됐다.

이 장관은 "현장의 흐름을 소통과정에서 전혀 담아내지 못하는 중앙의 책임이 나를 포함해 노동계에도 있다"고 말했다. 고용절벽을 피부로 느끼는 지역사회에서는 이미 지자체와 노동계, 민간기업이 '노동개혁→고용확대'로 이어지는 사이클에 올라탔는데, 중앙정부와 한국노총 지도부는 첨예한 힘싸움을 벌이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한 반성과 비판이다.

왼쪽 세번째가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사진=우경희 기자

노사민정은 민간단체가 들어간 것만 빼면 사실상 정부-한국노총-경총 등 노사정위와 같은 구성원을 가진 협의체다. 이날 부산 노사민정은 '일자리 창출과 선진고용문화 정착을 위한 노사민정 상생고용 협약서'에 사인했다. 대표들 뿐 아니라 일자리를 만들기로 약속한 100여명의 부산지역 기업 대표들이 모두 참석해 각각의 협약서에 직접 서명했다. 서명 후에는 풍선을 날리고 함께 배에 올라 갑판에서 상생의 비빔밥을 비벼 나눠먹었다. 부산 노사민정 관계자는 "촌스럽지만 제대로 해 보겠다는 퍼포먼스"라고 말했다.

이 장관은 이에 대해 "부산을 포함해 지역사회를 둘러보면 작년부터 벌써 대중소기업을 불문하고 근로시간 단축과 일자리 창출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노동개혁을 제대로 끌고 나가지 못하지만 지역사회와 기업은 이미 작업에 착수했다는 의미다. 실제 부산에 앞서 전국 주요 지역에서 노사민정이 고용창출과 노동시장 개혁을 약속하는 협약이 줄을 잇고 있다.

이 장관은 "7조6교대제를 도입한 어느 지방기업의 사례를 보니 늘어나는 부담을 '생산성향상·기업부담·근로자부담'으로 나누기로 했는데, 막상 시행해보니 생산성 향상으로 근로자 부담분이 충분히 상쇄가 됐다"며 "그러면서 교대제 개편을 통해 신입사원을 200명이나 채용했다. 이미 현장에서는 이런 의미있는 결과물이 나오고 있는데 중앙에서는 다툼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와 한국노총의 논의가 답보상태에 빠진 노동개혁안과 관련해서도 현장에서는 거부감보다 절박함이 읽힌다. 이날 부산에서 체결된 노사민정 협약서에는 △기업 생산성 증대 및 일자리 창출에 동참 △세대간 상생·노사간 상생을 위한 적극적인 협력과 양보 배려 △대·중기, 정규·비정규직 간 격차해소 등에 한국노총 부산지역본부와 대표기업이 합의한 내용이 담겼다. 정부 노동개혁안에 다름아니다.

이 장관은 "지역에서는 이미 노동개혁안에 대한 이해도와 수용성이 높아진 상태"라며 "노동계도 중앙 지도부가 정치적 해석과 입장만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지역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전 발표된 경영계의 성명에 대해서는 "투자 할테니 고용유연성을 확보해 달라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경총 등 경제 5단체는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해고규정을 지침이 아닌 법으로 만들것을 주장했다. 이 장관은 "경영계는 일본처럼 통상해고를 입법화해달라 요구하고 있지만 이를 법제화한다면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경직된다고 생각한다"며 "법원이 이미 엄격하게 판례를 적용하고 있는 만큼 법원 결론을 따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사정위 간사회의를 무산시킨 노동계의 '공공부문 원포인트 협의체' 우선 구성 요구에 대해서는 "이미 공공기관들이 임금피크제를 시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 추세대로 계속 진행하기로 정부와 노동계가 합의하고 넘어간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노사정위 논의는 지난 4월까지 합의가 이뤄진 부분은 그대로 인정하고, 그때 합의하지 못한 일반해고지침, 불리한 취업규칙 변경 내용과 비정규직 대책 등 추가로 논의하기로 한 것만 빠르게 진행해 신속하게 처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진=우경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