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하루, 야근 이틀…집에서 멀어진 '아빠'들

전국적으로 장맛비가 내리고 있는 30일 오후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시민들이 우산을 쓴 채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사진=뉴스1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유 모씨(33)는 아내와 대화할 시간이 하루 30분도 채 되지 않는다. 늦으면 밤 11시에 퇴근하는데다 그마저 일찍 들어갈 수 있는 날엔 원치 않는 회식에 붙잡히기 일쑤다. 유 씨는 "퇴근해서 가족들과 저녁도 먹고 싶고 하루 있었던 일을 나누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회의감이 들 때가 많다"고 말했다.


서울시에 사는 30~40대 워킹대디(Working Daddy, 일하는 아빠)들이 남성의 일·가족 양립이 잘 안 되는 이유로 노동시간이 길고 업무량이 많으며 현실적으로 직장에서 휴가제도 등은 사용하기 어려운 것 등을 꼽았다.

서울시는 지난 5월 28일부터 6월 10일까지 3040워킹대디 1000명을 대상으로 일·가족 양립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8.5%가 '노동시간이 길고 업무량이 많아서 일·가족 양립이 힘들다'고 답했다고 1일 밝혔다.

시가 조사한 결과 서울시의 30~40대 워킹대디 중 맞벌이 남편은 평균 아침 7시 32분경 집을 나서 약 53분 걸려 출근해 회사에 8시 25분쯤 도착한다. 하루 평균 근로시간은 9시간 14분이다.

하지만 1주에 평균 약 2회 야근(1.8회), 1회 회식·모임이 있어 1주일에 3일은 정시퇴근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휴일근무는 월 평균 약 2회(1.7회)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맞벌이 남편의 하루 평균 생활시간은 △자녀돌봄 1시간 19분 △가사참여 47분 △개인 여가 1시간 7분 등으로 아내에 비해 근로시간은 약 1시간 많지만 자녀돌봄과 가사참여는 절반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남편이 집에서 많이 하는 일은 △분리수거(42.3%) △자녀와 놀아주기(41%) △청소(39.6%) 등인 것으로 조사됐다.

일·가족 양립이 어려운 이유에 대해 응답자의 48.5%는 '노동시간이 길고 업무량이 많아서'를 꼽았고, 이어 △제도가 있어도 직장에서 사용하기 어려운 분위기(24.5%) △직장내 지원제도가 부족(10%) △육아휴직할 경우 소득감소(8.3%) △제도를 잘 몰라서(4.9%) 등의 순으로 답했다.

일·가족 양립을 위해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에 대해서는 10명 중 9명 이상(92.5%)이 '단축해야 한다' 는 의견을 보였다. 이를 위해 △불필요한 초과·잔업· 야근 감소(37.9%) △직장 상사 및 관리자의 인식 개선(26.5%) △유연근무제 활성화를 통한 생산성 향상(20.9%) △업무량의 감소(14.7%) 등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직장 내 가족친화 문화제도 활성화를 위해 가장 필요한 사항은 △경영진과 중간관리자의 적극적인 의지와 지원(59.1%) △사회적으로 남성의 양육참여에 대한 인식 개선(24.2%) △제도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11.8%) 등 응답이 나왔다.

이숙진 서울시여성가족재단 대표는 "일·가족 양립 관련 법과 제도는 있지만 현장에서는 제대로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며 "일하는 아빠들이 일과 가족 생활의 균형을 찾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워킹대디의 현실을 반영한 구체적인 정책대안을 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