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스크린도어 사고 '데자뷔'?…"'변명'까지 2년전과 닮은 꼴"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에서 지하철 정비업체 직원 조모(29)씨가 역으로 진입하던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껴 숨진 사고 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강남역 스크린도어 사고'에 대한 의혹이 해소되지 않는 가운데 책임주체인 서울메트로 등이 사고원인을 개인과실로 미루고 있어 유사 사고 재발에 대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특히 이번 사고 처리 및 수습 과정은 2년 7개월 전 발생한 사고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어 이같은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2013년 지하철 2호선 성수역 스크린도어 수리직원 사망사고 역시 서울메트로는 물론 외주업체의 책임 없이 개인과실로 마무리됐다.


◇강남역 사고 '회사지시' VS '개인과실' 공방
지난달 29일 오후 7시30분쯤 강남역 교대방면 10-2지점 스크린도어 고장접수를 받은 하청업체 유진메트로컴(이하 유진) 직원 조모씨(28)는 수리작업을 하던 중 선로로 진입하는 전동차 사이에 끼어 그 자리에서 숨을 거뒀다. 강남역의 요청으로 출동한 조씨는 작업 진행을 강남역과 회사 측에 보고한 뒤 작업했지만, 결국 개인의 안전규칙 미준수와 개인부주의 등으로 결론 나는 모양새다.

지하철 운행 중 스크린도어 수리를 하지 않도록 돼 있을 뿐만 아니라, 2인1조로 해야하지만 조씨가 이 같은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고 작업이 나섰다는 게 서울메트로와 유진의 입장이다. 특히 유진은 사고 초기 '강남역 측의 수리 요청도 없었는데 조씨가 홀로 출동해 화를 당했다'고 가족에게 사실과 다른 내용을 알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유가족들에 따르면 조씨는 평소에도 유진으로부터 '혼자 작업을 하라'는 지시를 받아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씨의 동갑내기 약혼자는 "평소에도 전동차 운행 시간 중 '혼자 작업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또 유진 측은 유가족에게조차 당초 2인1조로 작업하려던 파트너가 누구인지 여전히 밝히지 않고 있다.


◇ '변명'까지 닮은 2년 전 성수역 사망사고
강남역 사고와 매우 유사한 스크린도어 정비직원의 사망 사건은 2013년 1월 19일 오후 2시40분쯤 지하철 2호선 성수역에서 발생했다. 내용 뿐 아니라 사고처리 과정에서 서울메트로와 해당업체의 대응과정, 유가족들이 제기한 의혹 등도 매우 흡사하다.

당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은성PSD(이하 은성)팀장 심모씨(38)는 군자 차량기지로 진입하는 빈 전동차에 머리를 치어 사망했다. 야간작업과 2인1조 등 규정이 명확하지 않던 당시 서울메트로와 은성은 애매한 작업 규정을 탓하며 책임을 미루기에 급급했다. 은성은 "심씨가 지시도 없이 수리작업을 진행했다"면서 자살로까지 몰고 갔다.

서울메트로도 "전동차가 없는 밤에만 작업할 수 있는데 심씨가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은성은 "그런 지시는 들은 바 없다. 평소 서울메트로가 고장 신고해 작업했을 뿐"이라고 맞불을 놨다. 책임 '떠넘기기'가 계속되면서 결국 사건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결과로 마무리됐다. 경찰은 은성의 업무상과실치사 혐의에 대해 무혐의로 검찰에 송치했고, 검찰도 '혐의 없음'으로 결론 냈다.

◇"죽은자는 말이 없다"…강남역 피해자 유가족 "소송 않겠다"
2년 전 사고는 결국 재판을 통해 심씨 유가족이 은성으로부터 3000만원의 배상금을 받고 사건은 마무리 되는 것으로 결론났다. 심씨의 유가족들은 "낮에도 스크린도어를 수리하기 위해 작업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서울메트로 측의 책임까지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강남역 사고 역시 유사한 전철을 밟고 있다. 경찰은 유진을 대상으로 안전 수칙을 어겨 홀로 작업하도록 지시했는지 등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조사 중이다. 그러나 피해자가 사망한 탓에 회사 측의 지시를 증명할 수 있는 뚜렷한 증거를 확보하기 어려워 성수역 사망사고 당시와 마찬가지로 '무혐의'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가 나온다.

특히 소송을 통해 억울한 죽음을 밝히려던 조씨의 유가족들도 끝내 마음을 돌렸다. 한 유가족은 "이미 세상을 떠난 아이가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더 이상 사고에 대해 얘기하고 싶지 않다"며 "소송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 서울메트로 시간 끌기에 눈치만 보는 업체들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2차례나 발생했음에도 서울메트로가 뾰족한 방안을 내놓지 못하는 등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이, 스크린도어 업체는 원청업체의 눈치만 보고 있다. 서울메트로는 지난 1일 이 같은 사고를 통해 전동차 안전과 관련된 업무를 직영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해 기준 부채가 4400억원에 달하는 등 건전성 개선이 절실한 서울메트로의 사정을 감안하면 이 같은 검토가 현실화될지는 미지수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은 "하청업체들이 효율성만 따지다 보니 근로자 안전 문제는 소홀해 질 수밖에 없다. 성수역 사망사고 후 서울메트로는 형식적인 대책만 제안했다"며 "또 다른 사고를 막기 위해선 서울메트로는 물론 시 차원의 통 큰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