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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의 틱, 택, 톡] 추석 단상

김재동의 틱, 택, 톡 머니투데이 김재동 기자 |입력 : 2015.09.26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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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앞둔 24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이 여행객으로 붐비고 있다. /사진= 뉴스1
추석을 앞둔 24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이 여행객으로 붐비고 있다. /사진= 뉴스1


해마다 추석이면 떠오르는 기억 하나가 있다.

1990년대 중반쯤의 어느 추석이었다. 고속버스표 예매가 시작됐을 때 몇 시간 줄을 서 연휴 첫날 버스표 한 장을 확보했다. 연휴전날 마침 야근이 걸려 집사람과 아이 둘은 먼저 청주 본가로 내려 보냈었다.

연휴 전 야근이란 것이 좀 설렁 설렁이다. 대충 강판하고 대충 노닥거리던 중 소형차를 새로 뽑은 동기가 제안했다. 합정동에서 친구 내외 태우고 전주로 가기로 했는데 청주에 들러 내려주겠노라고. 제 아무리 오래 걸려도 고속버스 탈 시간이면 집에 도착할 수 있겠다는 깜냥이 섰다. 오케이. 옆에서 듣고 있던, 역시 청주가 고향인 교정부 동기도 가세했다.

밤11시 넘어 회사를 출발, 합정동에서 동기의 친구내외를 태운 시간이 밤 12시. 임신 중인 부인에게 조수석을 양보하고 남자 셋이 뒷좌석을 차지했다. 비좁았다. “그래 봤자 몇 시간인데 뭐” 하는 심정으로 합정동을 떠났다. 잠깐 졸았다 깨보니 올림픽대로였다. 또 깜빡했다 눈 떠보니 여전히 올림픽대로 였다. 동이 훤히 터올랐다. 강 너머로 워커힐호텔이 보였다. 합정동부터 근 예 닐 곱 시간 걸려 그만큼 간 셈이다. 결국 청주까지 16시간이 걸렸다. 후일담이지만 그 동기는 전주까지 23시간 걸렸다고 한다.

동기는 우리에게 고속도로 상에서 내려줄 것을 요구했다. 고속도로가 주차장이었으니 못내릴 이유도 없었다. 그렇게 내려 고속도로 가드레일을 넘으니 연휴를 맞은 공업단지의 오후가 휑했다. 다시 텅 빈 공단을 관통하는 도보행진. 물색없이 들어온 택시 한대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집에 도착해선 어른들께 인사한 후 여기저기 고향친구들을 수배했다. 애들 보랴 전 부치랴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눈 흘기는 마누라를 외면하고 나가선 기어코 흥건히 취해서야 들어왔다.

그 해만 유별났지만 어쨌거나 고속도로 거리 128km는 명절 귀향 귀성길에서만큼은 대 여섯 시간은 족히 걸리는 원거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절이면 당연히 가야 하는 고향 였고 그 바쁜 와중에 친구들 한번 만나보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던 것이 시나브로 시들해졌다. 고향친구들을 만나 회포풀기보단 올라갈 길이 급해졌다.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후다닥 산소까지를 돌아보곤 귀경을 서두르게 됐다. 그나마 어머니 돌아가신 후론 모여서 음식 장만하는 풍경도 사라지고 형제들 제각각 집에서 할당된 음식을 해 와선 차례지내고 한 끼 나눠먹고 헤어지는 모양새로 굳어졌다. 우리 집뿐 만은 아닌 듯 한때 ‘역귀성’ ‘콘도 차례’ 등이 이슈가 되더니만 이제는 언급도 되지 않을 만큼 당연해졌다.

서운한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모여서 여자들만 하던 음식장만을 제각각 집에서 하다 보니 부부애는 돈독해진 것도 같다. 산적꼬지도 거들고 프라이팬에서 전 뒤집기도 거들고 그러면서 “아, 옛날이 좋았는데” 한마디 건네면 “낯선 시댁에 혼자 남겨놓고 놀러나간 주제에”란 퉁박이 되돌아오기도 하고...

어쨌거나 예전에 당연했던 가치가 새로운 가치로 대체되는 세태를 보며 씁쓸함은 남는다. 그 속도가 너무 급해서 우려도 된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명절과 고향은 심리적 피난처일 수도 있을 텐데 그 정겨운 위안이 빠르게 퇴색해가는 게 많이 안타깝다. 우리 아이들이 내 나이가 됐을 때 추석의 풍경은 또 어떻게 변해있을지.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돌아가도 그런 가치들은 느릿느릿 오래도록 유지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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