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환마마보다 무서운 '디플레 기대심리'

유로존 금융시장의 향후 5 ~ 10년간 기대 인플레이션

지난 3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유럽중앙은행(ECB)의 미국식 양적완화(중앙은행의 국채매입)는 지난해 8월말에 본격적으로 예고된 것이었습니다. 당시 미국 와이오밍주에서 열린 '잭슨홀 심포지움'에서 마리오 드라기 총재가 "물가안정을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선언한 것이지요.

여기서 말하는 '물가안정'이란 물가가 너무 떨어지는 현상, 디플레이션을 막겠다는 뜻이었습니다. '모든 수단'이라고 했으니 당연히 미국식 양적완화도 포함된 얘기였고요.


미리 배포된 원고에도 없던, 즉흥적으로 급조된 이 선언이 각별히 지목한 것은 유럽 금융시장에서 형성되고 있던 물가하락 기대심리였습니다. 갖은 부양책을 써봤자 ECB는 2%라는 물가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거라는 비관론이 드라기 총재 연설 직전부터 뚜렷해졌죠. (위 그래프는 유럽 금융시장 가격에 반영돼 있는 향후 5년 뒤부터 5년간의 물가상승률 예상치 추이입니다.)

드라기 총재로서는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었겠죠. 중앙은행이 경제주체들의 '기대 인플레이션' 변화를 두려워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일본의 장기침체 경험입니다. '물가가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사람들 사이에 팽배해지면 소비가 소극적으로 바뀝니다. 매출액이 정체된 기업들은 임금을 잘 안 올려주려고 합니다. 노동자들은 물가가 싸니까 순순히 받아 드립니다. 임금이 정체되니 씀씀이는 더 소극적이죠. 이게 악순환을 일으키면서 경제가 장기침체에 빠진다는 게 중앙은행들의 생각입니다.


둘째는 중앙은행의 신뢰 문제입니다. 경제주체들이 디플레이션 기대심리를 갖는다는 건 중앙은행의 물가안정 능력과 의지를 믿지 않는다는 걸 뜻하죠. 중앙은행이 신뢰를 잃으면 화폐의 신뢰도 위태로워집니다. 과거 많은 곳에서 나타났던 인플레이션도 그렇게 발생했던 것이죠.

지난해 10월말 할로윈데이 때 일본은행이 "양적완화를 확대하겠다"는 깜짝 발표를 내놓았죠. 당시에 일본은행이 힘주어 강조한 것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디플레이션 기대심리를 퇴치하겠다"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이 디플레이션 기대심리라는 위협이 과연 실체가 있는 것일까요? 다음 편에서 한 번 다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