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갱신청구권 없는 전·월세 전환율 인하 유명무실"

지난달 17일 서울 강남구의 부동산 밀집 상가에 전월세 매물을 알리는 전단이 붙어있다. / 자료=뉴스1

#서울 성동구의 전용면적 59㎡ 아파트에 전세(보증금 2억5000만원)로 사는 최모씨는 재계약을 두 달여 앞두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집주인이 전세금을 올리는 대신 보증금 2억원, 월세 62만원의 반전세를 요구해서다.

주변 시세를 고려한 전·월세전환율은 7%가 넘는다. 최씨는 “애들이 학교에 들어가면서 지출이 점점 늘고 있어 보증금이 줄어도 매달 62만원의 월세를 지급하는 것은 부담이 크다”며 “좀더 저렴한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나 고민”이라고 푸념했다.


정부와 여당이 서민주거대책의 일환으로 주택임대차보호법상의 전·월세전환율을 현행 6%에서 5% 정도로 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전·월세전환율이 인하되면 세입자들은 그만큼 월세 부담을 덜 수 있지만 실제 효과는 거의 없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현행법상 전·월세전환율은 임대차 계약기간에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하는 경우에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최씨처럼 재계약을 하거나 신규계약 때는 적용되지 않는 것. 전·월세전환율 인하가 계약갱신청구권 등 보완장치 없이는 유명무실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6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월세전환율 인하는 기준금리에 일정비율을 더하는 방식으로 추진된다. 현재는 1할(10%) 또는 기준금리의 4배(기준금리×4) 중 낮은 비율을 선택하도록 돼 있다.


국토부 고위관계자는 “현행 방식은 기준금리 변동에 따라 전·월세전환율 변동폭도 커진다는 단점이 있다”며 “변동성을 낮추기 위해 기준금리에 일정비율만 더하는 방식으로 제도 개선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월세전환율 인하폭은 현행 6%보다 1%포인트가량 낮은 5%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김경환 국토부 제1차관은 지난달 3일 국회 서민주거특별위원회에 참석, “전·월세전환율 계산방식을 개선해 5% 정도로 낮출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전·월세전환율이 낮아지면 세입자는 그만큼 월세부담을 덜 수 있다. 예컨대 보증금 1억원을 월세로 전환할 경우 지금은 연간 월세부담액이 600만원이지만 앞으로는 500만원으로 줄어든다.

문제는 전·월세전환율이 적용되는 기준이다. 현행법상 전·월세전환율은 계약연장이나 신규계약에는 적용되지 않고 임대차 계약기간에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할 경우에만 한정된다. 집주인은 전세 계약기간이 끝나고 월세로 돌리면 그만이다.

임대차시장에서 법정 상한선을 뛰어넘는 전·월세전환율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의 공식통계조차 지난 7월 전국 평균 전·월세전환율은 7.4%에 달한다.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는 전·월세전환율 인하가 실질적으로 효과를 보기 위해선 계약갱신청구권 도입,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 설치 및 조정권한 부여 등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재산권 침해와 전·월세 전환가격 급등 등을 이유로 강하게 반대해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공회전만 반복하는 상황이다. 최승섭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부동산감시팀 부장은 “보완장치 없는 전·월세전환율 인하는 서민주거대책이 아닌 보여주기식 행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