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PP 타결로 한국 'FTA 효과' 백지화?

/그래픽=유정수 디자이너

초읽기에 들어간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의 타결·발효는 아시아·태평양 역내 경제질서를 크게 흔들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TPP가 가장 포괄적이고 높은 수준의 자유화를 목표로 하는 ‘메가 FTA(자유무역협정)’이라는 점에서 통상국가를 지향하는 한국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예측된다. 초기 가입국으로 참여하지 않은 정부의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5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TPP 창립국은 미국, 캐나다, 멕시코,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 브루나이, 베트남, 말레이시아, 칠레, 페루, 일본 12개다.


이들의 GDP(국내총생산)가 전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7.1%다. 또 전 세계 교역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5.7%에 이른다. TPP가 공식 발효되면 아시아·태평양은 물론 세계에서 가장 큰 자유무역지대가 탄생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TPP 창립국 지위를 놓친 한국에 대한 경제적 악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공격적인 FTA 네트워크 확대를 바탕으로 성장해 왔는데 TPP에서 소외되면서 공들여 구축한 ‘FTA 효과’가 단숨에 날아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한국과 주력산업이 비슷해 민감도가 높은 일본이 TPP 창립국으로 참여하면서 한국이 FTA 네트워크를 통해 누리던 시장선점 효과를 빼앗아 갈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한국이 당장 피해를 볼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것이 전문가 다수의 분석이다.

한국은 TPP 12개 창립국 가운데 미국, 캐나다, 호주, 칠레, 싱가포르, 페루, 말레이시아·브루나이(아세안)와 이미 FTA가 발효돼 있으며 뉴질랜드, 베트남과는 FTA 협상이 타결됐다. TPP 역시 다른 FTA와 마찬가지로 12개 창립국이 개별적으로 상품협정을 진행해 개방수준을 정하기 때문에 한국의 시장선점 효과가 단기간에 사라지리라는 주장은 지나친 ‘비관론’이라는 지적이다.

또 규범적으로도 TPP가 한·미 FTA를 뼈대로 하고 일부 분야에서 진전을 도모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로서는 한국 기업이 크게 손해 볼 가능성은 적다는 관측이다. 정부 관계자는 “협정문이 대외비다 보니 아직 정확한 내용을 확인하지 못했다”면서도 “2013년 말부터 창립국과 예비 양자협상을 진행해 본 결과 한·미 FTA의 자유화 수준이 매우 포괄적이고 높은 수준이었기 때문에 크게 달라지진 않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발효 시점도 한국에 위협적이진 않은 상황이다. TPP 12개 창립국이 협정문을 이루는 30개 챕터에 대해 사실상 ‘원칙적 타결’을 이뤘지만 잔여쟁점을 모두 해결하는 ‘실질적 합의’에 이르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다. 이후 품목별 원산지기준(PSR) 등도 별도의 후속협의가 필요하다.

한 통상전문가는 “잔여쟁점이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회람 등 물리적 절차를 감안하면 빨라도 올 연말께나 ‘실질적 타결’가 이뤄지고 그 이후 일정 시일이 더 지나야 ‘완전 타결’가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미국의 경우 대통령무역촉진권한(TPA)법에 따라 대통령이 TPP 협정문에 서명하기 90일 전까지 의회에 통보하도록 했다. 서명한 협정문이 의회로 넘어가면 다시 미국내 이행법안 등을 포함한 비준절차가 진행된다.

미국 외 주요국의 비준절차도 각 국가 상황에 맞춰 진행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완전 타결’ 이후에도 실제 발효까지는 1~2년이 더 소요될 전망이다.

한편 정부는 TPP 가입과 관련해 협정문이 공개되면 세부적인 경제적 영향 분석, 국내 의견수렴 등을 거쳐 참여여부에 대한 공식 입장을 정할 방침이다. 현재 한국 이외에도 대만, 필리핀, 콜롬비아 등이 TPP 가입 여부를 타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통상협정은 언제나 국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결정한다는 게 제1의 원칙”이라며 “TPP 회원국들과 예비 양자협의를 진행했던 경험 등을 감안하고 또 국내외 여러 무역 환경을 고려해 정부 입장을 정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정부는 TPP와 별개로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과 한·중·일 3개국 FTA 등 TPP 대체 효과를 발휘해 무역투자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다른 협상에 적극 참여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