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평정한 '주먹' 장정구…또 다른 도전은?

장정구 전 WBC 라이트플라이급 세계챔피언 / 사진=강경래 기자

"권투요? 이젠 복싱이죠. 온 가족이 함께 즐기는 생활체육입니다."

한국을 넘어 전 세계 링 위를 장악했던 프로복서 장정구(52). 그는 1983년 세계복싱위원회(WBC) 라이트플라이급 세계챔피언에 오른 뒤 무려 15차 방어전까지 치러냈다. 통산 전적은 38승(17KO) 4패.

장정구는 2000년 WBC가 선정한 '20세기를 빛낸 위대한 복서 25인'에 이름을 올렸으며 2010년에는 '국제복싱 명예의전당'(IBHOF)에도 헌액 됐다. 최근 서울 장안동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체육관을 창업한 장정구 관장을 5일 만나봤다.

"한일전은 긴장감도 크지만 또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기도 했다. 도카시키와의 경기가 그러했다. 당시 훈련하는 과정에서 무려 14㎏이나 감량하고 경기 당일에는 탈진까지 일어날 정도였지만, 결과는 통쾌한 승리였다."

장 관장은 지난 1984년 8월 18일 치러진 도카시키 가쓰오와의 대결을 현역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로 꼽았다. 당시 광복절 이후 사흘 만에 경기가 치러지면서 응원 열기는 한층 뜨거웠다. 장 관장은 이에 부응하듯 도카시키를 9회 화끈한 TKO로 물리쳤다.

"사춘기 때부터 20년 가까이 복싱만 했다. 지겨웠다. 은퇴한 후 복싱을 다시 돌아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이런저런 사업에 나섰는데, 잇달아 고배를 마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복싱 외에는 진정으로 원해서 했던 일은 하나도 없었다."

그는 은퇴 후 외식업을 포함해 여러 사업을 진행했으나 녹록하지 않았다. 가장 최근에는 서울 역삼동에서 간장게장집을 운영했으나 이마저도 1년 4개월 만에 문을 닫아야 했다. 그러던 차에 오랜 지인으로부터 "이것저것 하지 말고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해보라"는 말을 듣고 고심 끝에 복싱 지도자로 돌아왔다. 복싱을 떠난 지 24년만의 일이었다.

"한국에서 과거처럼 세계시장을 누빌만한 복서가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대신 이젠 복싱이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생활체육으로 인식되고 있다. 체육관에 있다 보면 가족 단위로 등록하러 오는 경우가 많다. 다이어트와 체력보강 등을 위해 찾는 것이다. 복싱도 옛것을 고집하기보다 새 시대에 맞게 변해야만 한다."

장 관장은 오랜 선수 경력에도 불구하고 소위 '권투체육관'이란 명칭을 고집하지 않았다. 그가 내건 간판은 '장정구 복싱클럽'이었다. 과거 헝그리와 주먹질의 대명사였던 '권투'에서 벗어나 이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생활체육으로서의 '복싱'으로 새롭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장 관장은 한국 복싱에 대한 애정 어린 말도 잊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현재 복싱 관련 단체가 3∼4곳이나 된다. 지금은 이권을 내세우는 것이 아닌, 모든 걸 내려놓고 하나로 통합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시기다. 하나의 단체에서 하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는데 힘을 보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