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CIO 독단적 교체, 공사화 갈등 파문

최광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13일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500조원의 기금운용을 총괄 책임지는 홍완선 기금운용본부장의 교체를 통보했다. 기금운용본부장 임면권자인 복지부 장관의 승인 없이 독단으로 홍 본부장의 연임 불가를 결정한 것은 월권이라는 지적이다. 기금운용본부 공사화 등 국민연금을 둘러싼 갈등이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꼽힌다.

시장 안팎에서는 지난 8월말까지만 해도 홍 본부장의 연임 전망이 유력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상 성과평가에 따라 1년 연임할 수 있다. 홍 본부장은 유례없는 저성장·저금리 여건 속에서도 지난해 5%대 수익률로 선방한 데다 투자체계 개편에서도 성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임기 시작이 5~6개월 차이가 나지만 최 이사장의 임기가 3년인 만큼 차기 이사장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차원에서도 홍 본부장을 1년 더 연임시킬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전임인 이찬우 본부장도 전광우 전 이사장과 3년 임기를 채웠다. 기금운용본부에서는 최근까지 홍 본부장 주도로 사상 첫 헤지펀드 투자를 포함한 하반기 운용을 준비해 왔다.

최 이사장이 홍 본부장에게 연임 불가를 통보한 데는 성과평가보다는 정치적 판단이 더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교체할 만한 명분이 부족한 상황에서 정 장관마저 수차례 반대 의사를 밝혔는데 단독 행동에 나섰다는 점에서도 이런 해석에 힘이 실린다.

국민연금 안팎에서는 그동안 최 이사장과 홍 본부장의 불편한 관계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기금운용과 관리 방안 등을 두고 갈등이 빈번했다는 게 내부 관계자의 전언이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최 이사장이 투자 집행에 대한 사전보고를 받는 등 기금운용본부에 지나친 관심을 보이면서 관계가 어긋나기 시작했다"며 "올 상반기에도 대체투자 사후관리 감독권을 두고 내내 마찰을 빚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규정에는 운용 독립성 보장을 위해 투자 관련 사안을 이사장이 아닌 기금운용본부장이 전결하게 돼 있다.

최 이사장이 홍 본부장 교체 결심을 굳힌 시기도 기금운용본부 공사화에 대한 이견이 공식화된 지난 9월로 분석된다. 최 이사장은 추석 연휴 전후로 정 장관에게 홍 본부장의 연임에 대해 부정적인 의사를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여당의 기금운용본부 공사화 압박이 거센 가운데 국정감사에서 홍 본부장까지 공사화에 찬성 입장을 보이자 결국 인사로 의지를 보인 게 아니겠냐"고 말했다. 최 이사장은 그동안 공사화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해왔다.

일각에서는 최 이사장이 임기 7개월여를 남기고 홍 본부장과 동반 퇴진할 생각까지 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정 장관의 동의 없이 단독 행동에 나서면서 어느 정도 각오를 하지 않았겠냐는 얘기다. 공공기관 운영법과 국민연금법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의 임면은 공단 이사장의 제청과 보건복지부 장관의 승인으로 이뤄진다.

복지부 고위 관계자는 "협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최 이사장이 일방적으로 연임 불가를 통보한 것은 부적절한 조치"라고 지적했다. 복지부가 그동안 소관기관인 국민연금에 대해 민감한 발언은 자제해왔다는 점에서 이번처럼 강한 유감을 표명한 것은 이례적이다.

여당 내부에서도 최 이사장의 단독 행동에 대한 부정적인 기류가 역력하다. 최 이사장이 국감에서 공사화에 대한 입장을 오락가락한 것을 두고도 이미 해임건의안 얘기가 나오고 있다.

정치권 한 인사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간 주도권 잡기 신경전이 한창인 가운데 국민연금의 수장이 돌발 행동에 나서면서 운용본부 공사화를 포함한 국민연금 개편 논의가 다시 여야간 공방으로 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