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칸토 창업주 외손자, 가업승계 대신 창업 택한 이유는?

박기범 유아더디자이너 대표/사진=유아더디자이너 제공

구두 디자인 앱 스타트업 유아더디자이너의 박기범 대표(35)는 3대째 이어온 제화패션 브랜드 집안에서 자랐다. 제화패션 브랜드 엘칸토 창업주의 외손자이자 엘칸토의 사내 벤처로 시작된 무크(MOOC) 창업주도 그의 외삼촌이다. 그의 아버지 역시 엘칸토 구두 공장을 운영했다. 2006년부터 무크 MD(Merchandiser·상품기획자)로 근무하던 그는 가업을 그대로 이어받는 대신 창업을 선택했다.

"구두 생산, 유통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박 대표는 창업에 나선 이유를 이같이 밝혔다.


◇'정가에 사면 손해?'…제화업계 왜곡된 유통구조

그는 구두 유통 구조가 가격을 올릴 뿐 아니라 소비자도 정가에 사면 손해를 보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백화점에 입점한 구두 브랜드의 경우 소비자가격은 유통 수수료가 40~50%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세일 행사를 대비해 10% 정도 가격을 더 올려 책정하기도 한다.

그는 "소비자는 세일 기간에 구두를 저렴하게 구매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소비자 가격에는 할인 비용도 포함돼 있다"며 "결국 정가에 구매한 소비자만 손해를 보는 셈"이라고 말했다.

구두 브랜드는 백화점에 입점하고 좋은 몫을 배정받기 위해 높은 수수료를 부담해야 한다. 세일 기간 할인가도 백화점이 아닌 브랜드가 부담해 이를 소비자가격에 반영할 수밖에 없다는 것.


박 대표는 2010년 무크 신규사업팀에서 새로운 기획을 하던 중 소비자 요구에 맞는 브랜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다 사내벤처로 시작해 함께 일하던 사원 2명과 함께 지난해 독립했다. 기존 시스템 내에 있으면 혁신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현재 직원은 대표를 포함 총 3명이다.

첫 시작은 구두 디자인 앱 '유아더디자이너'(You are the designer)다. 소비자가 구두를 구매할 때 원하는 색깔이나 소재, 장식물 등을 추가로 요구한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전통적인 구두 디자인, 생산방식에서 벗어나 소비자가 직접 디자인한 구두를 생산해 구입할 수 있도록 한 것. 2013년 10월 앱을 출시한 이후 쌓인 디자인 수는 70만개에 이른다.

◇수수료 거품 빼고…국내 명품 제화 브랜드 도전

최근엔 유통 수수료 거품을 제거하는 데 새롭게 도전하고 있다. 오는 11월 출시 예정인 남성 구두 브랜드 맨솔(MANSOLE)을 통해서다. 맨솔은 서울 마포구 상수동 제화 장인·공장과 소비자를 바로 연결하는 플랫폼을 구축해 별도 유통 구조를 없앴다.

맨솔은 높은 품질의 수제화를 백화점 가격보다 저렴하게 공급하는 게 목표다. 대신 그만큼 상수동 구두 장인들에게 몫을 더 나눠줘 품질을 관리하겠다는 것. 구두를 소비자에게 전달할 때 장인의 인사말이나 소개서를 함께 보내는 이유다.

그는 "'왜 우리나라에는 명품 브랜드가 나오지 않을까?'라는 말이 나오는데 현재 브랜드는 유통 수수료를 부담하기 위해 원가를 최대한으로 낮춰야 하는 상황"이라며 "결국 품질이 저하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높은 가격 수준으로 명품을 구분하는 경향이 있는 국내의 인식은 넘어서야 할 도전과제다. 장인들의 제품, 명작(masterpiece)를 명품으로 보는 해외와 인식 차이가 있다.

박 대표는 '좋은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고자 하는 소비자 욕구가 유통 구조에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소셜커머스 쿠팡, 쿠차 등이 소비자에게 호응을 얻는 데는 이 같은 욕구를 반영한 결과라고 생각한다"며 "패션업계가 아직 보수적이고 (자사) 매출도 미미하지만 조금씩 변화가 생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맨솔(MANSOLE) 시제품/사진=유아더디자이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