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꼬임에 넘어가 영혼을 판, '파우스트'의 현대판?

머니투데이

김유진 기자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향락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돈을 뿌리며 자신을 숭배하게 만들고 있다. /사진제공=서울시오페라단

서울시오페라단이 창단 30주년을 맞아 선보이는 샤를 구노 버전의 오페라 '파우스트'.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팔고 젊음을 산 파우스트가 미녀들 사이에서 즐거워하고 있다. /사진제공=서울시오페라단

"오 이상스런 광기여! 그 인류는 혼란 속에 발을 담그고, 전투적으로 돈의 노예처럼 피와 진흙탕 놀음을 합니다…."

늙고 병든 몸이 버거웠던 한 남성이 독약을 마시고 자살을 하려 한다. 생의 마지막 순간, 악마에게 차라리 나를 데려가 달라고 소리를 지르는 남성 앞에 '짠' 하고 악마가 나타난다. 빨간 뿔을 머리에 달고, 긴 꼬리를 살랑거리며 나타난 악마는 그에게 거래를 제안한다. 문학사에서 가장 강렬한 장면 중 하나인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의 '영혼과 젊음의 거래'다.

서울시오페라단이 창단 30주년을 맞아 오는 25일~2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선보이는 프랑스 작곡가 샤를 구노의 '파우스트'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소설에 서정적인 음악을 붙인 버전이다. 같은 소설을 소재로 한 16개의 오페라 중에서도 걸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유럽에서 활동하는 오페라 연출가 존 듀가 연출을 맡았다.

지난 23일 리허설을 통해 미리 관람한 이번 오페라는 1773년 지어진 원작을 배경으로 하는 오페라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현대적인 무대 장치가 인상적이다. 총 32개의 기둥 형태로 된 LED 조명은 거의 유일한 무대 장치로 활용된다. 짙은 붉은 색으로 피가 낭자한 현장을 표현하고, 차가운 푸른 빛으로 싸늘한 분위기를 표현하는 등 무대 분위기가 오로지 조명의 색깔에 의존한다.

등장인물들의 의상 또한 마찬가지로 현대적이다. 파우스트와 메피슽토펠레스를 포함해 이 오페라에서 이름이 불리는 역할을 맡은 인물은 10명이 안 되지만 70여 명이 넘는 조연이 추가로 출연한다. 마치 지금 당장 길거리에 나가서도 볼 수 있을 법한 현대적인 의상을 입고 있으며, 쇼핑백이나 유모차 등 가지고 있는 소품도 마찬가지다.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향락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돈을 뿌리며 자신을 숭배하게 만들고 있다. /사진제공=서울시오페라단

무대 장치가 단순해진 만큼 광활한 무대에서 오로지 배우들의 연기만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수많은 출연자 중 누구보다도 돋보인 것은 메피스토펠레스의 매력이다. '더 멋진 세상이 있다'고, '여인과 젊음을 포함한 세상 모든 것을 선사할 수 있다'고 파우스트를 꼬드기는 빨간 뿔의 악마를 보다 보면 무섭다기보다는 절로 웃음이 나온다.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고, 익살스런 표정으로 일렉기타를 메고 성행위를 연상케 하는 행동을 하며 무대를 휘어잡는 모습은 '파우스트'라는 철학적인 작품에서 기대하지 못했던 반전이다.

서울시오페라단이 창단한 해와 동일한 30년 전인 1985년에 최초로 이 작품을 무대에 올렸던 존 듀는 "악은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으며, 악마는 (기독교적) 권선징악을 말할 때 꼭 필요한 존재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런 만큼 작품의 전개 과정은 악마의 꼬임에 넘어가 해서는 안 될 거래를 해 버린 파우스트의 절망적인 최후로 나아간다.

그 과정에서 서사가 단순해진 것은 약간의 아쉬움을 남겼다. 괴테가 60년에 걸쳐 집필한 이 거대한 드라마는 구노의 버전에서 남녀노소 관계 없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된 만큼 전달하는 메시지가 간략해졌다. 이는 4시간이 넘는 '프리츠 외저 버전' 악보를 서울시오페라단에서 공연하기 위해 우리나라 사정에 맞춰 편곡하면서 공연이 2시간 가량 줄어들어 발생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대한 대서사시를 지루하지 않고 속도감 있게 볼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이다. 파우스트 역의 테너 김승직, 메피스토펠레스 역의 베이스 박기현 등이 선보이는 프랑스어의 아름다운 발음이 경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윤호근 지휘)와 어우러져 듣는 즐거움도 가득하다. 전석 3만~15만원, (02)399-17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