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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의 틱, 택, 톡] 응답하라 1988

김재동의 틱, 택, 톡 머니투데이 김재동 기자 |입력 : 2015.11.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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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88'의 장면들. /사진제공=tvN
'응답하라 1988'의 장면들. /사진제공=tvN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요즘 산울림 노래 ‘청춘’을 자주 흥얼거리게 된다. 자주 들어서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 때문일 것이다. 김필이 부르고 김창완이 피처링한 ‘청춘’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온다.

‘응칠’ ‘응사’하면서 세간에 화제가 됐을 때 제대로 드라마를 챙겨보진 못했다. 그런데 어쩐지 ‘응팔’은 가능하면 찾아보게 된다. 80년대 보낸 대학시절의 향수때문일 것이다.

살아온 여정을 돌이켜보면 슬프거나 기뻤던 순간조차 애잔하다. 그 애잔함은 놀랍게도 오늘을 살아내는데 위로가 된다. 미래가 불안한 탓에 살아낸 과거의 향수에 더 목을 매는지도 모를 일이다. 드라마중에서 시대극이 갖는 강점이 여기 있을 것이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다루고 있는 그 88년엔 민정당 노태우후보가 제13대 대통령에 취임했고, 24회 서울하계올림픽이 열렸다. 공주교도소 이송 중이던 미결수 12명의 탈주사건이 있었고 결국 주범 지강헌의 ‘유전무죄 무전유죄’란 단말마로 막을 내리기도 했었다. 그리고 민주화를 갈망하던 국민들에겐 상실의 계절이기도 했다. 1987년 12월16일 있었던 대선투표에서 통일민주당 김영삼 28% - 평화민주당 김대중 27%로 표가 갈리며 36.6%의 신군부 노태우 후보에게 정권을 다시 넘겨줬기 때문이다. 민주화 지도자로서 YS와 DJ가 그때처럼 욕을 많이 먹은 적은 없었을 것이다. 군사정권의 종식을 기원하던 많은 이들에게 그해 봄은 고인 물처럼 흐르지 않는 듯 했다.

6.29선언이 나오기전 학교서 받은 유인물을 가방에 넣은채 광화문을 활보하다 불심검문을 받은 기억이 있다. 당연히 유인물은 발각됐고 파출소를 거쳐 종로서까지 넘어갔다. 다행히 반성문을 쓰고 나오긴 했다. 하지만 반성문만으로도 이루 말할 수 없는 굴욕감이 들었었다. 뭘 잘못했다고 반성문을 쓰나 싶은 반감이 솟구쳤다. 하지만 폭력이 두려웠고 집에 미칠 보복도 두려웠다. 이것도 잘못했고 저것도 잘못했습니다 자필로 적어내는 비굴함이라니..

그래서 87년 6월 항쟁의 결과물은 달콤했다. 민주화는 좋은 것이었다. 군사정권은 종말을 고해야 마땅한 것이었고 그렇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두사람의 반목으로 그런 염원은 물거품이 됐다. YS와 DJ 양 진영은 서로를 비난했다.

그리고 9월 서울올림픽이 열렸다. 80년 22회 모스크바 대회는 소련의 아프카니스탄 침공으로 자유진영이 불참함으로써 반쪽 올림픽이 되고 말았고 84년 LA올림픽 역시 공산진영이 불참했다. 분단국의 수도 서울서 열린 24회 올림픽엔 사상최대 159개국이 참석했다. 명실상부한 세계인의 축제로 ‘평화올림픽’이란 찬사를 받았다. 시민들은 한마음으로 승용차 홀짝 운행 등에 자발적으로 동참하며 성공개최에 동참했다. 금메달 12개의 한국선수단은 소련, 동독, 미국에 이어 4위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며 국민들에게 자부심을 안겼다. 주제가였던 코리아나의 ‘손에 손잡고(Hand in hand)’는 세계인들에게 애창됐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 붕괴시에도 독일 시민들 사이에 울려퍼지며 화합의 노래로 자리매김하기도 했다.

하지만 올림픽이 끝나고 11월이 되자 제5공화국 권력형비리 조사를 위한 5공 청문회가 열렸다. 대한민국은 다시 분열속으로 휘말려 들어갔다. YS와 DJ의 골은 깊어졌고 영호남 지역갈등도 더욱 첨예해졌다. 그리고 근 30년이 지난 대한민국의 현실 역시 크게 나아지지 못했다.

26일 김영삼 전대통령의 국가장이 끝났다. YS는 지난 2009년 8월 병상의 DJ를 위문한 후 “두분이 화해한 것으로 봐도 되겠나”는 질문에 “그렇게 봐도 좋다”고 답했다. 그렇게 그들은 화해했다. YS가 마지막 남긴 붓글씨도 ‘통합과 화합’였다. 노정객의 마지막 메시지가 온국민에게 울림을 주었으면 좋겠다. 더 이상 빈 손짓에 슬퍼하지 말고 벽을 넘어서 손에 손을 잡았던 1988년 올림픽 당시의 향수를 되새기며 서로의 상처를 핥아주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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