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0원' 서울대 야구부 감독 "요즘 학생, 공부는 잘해도…"

서울대 야구부 이광환 감독 인터뷰

"봐봐. 형아들 멋있지. 너도 서울대 야구부 하고 싶으면 서울대부터 입학해야 해"
지난 21일 야구부 정기 연습게임이 있는 서울대학교 체육대학교 야구장 한켠에서 한 엄마가 아직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있었다. 서울대야구부는 이렇게 누군가에 꿈이 되고 있었다. 이날은 토요일을 맞아 서울대 관악캠퍼스 곳곳에 국내 최고 대학을 방문해 자녀에게 공부 동기를 심어주고 싶은 부모들과 아이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팀워크를 아는 엘리트 만들기
'신바람 야구'로 알려진 이광환 전 LG트윈스 감독이 서울대 야구부 감독으로 온 이래, 야구부는 부모들과 학생들에게 보다 구체적인 꿈으로 자리하게 됐다. 올해까지 312전 1승 1무 310패의 만년 꼴찌팀이지만, 야구만을 특기로 하지 않은 친구들이 열정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모습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

실제 21일 게임에서 1루수를 맡았던 체육교육과 김세민군(20세) 역시 이광환 감독과 서울대 야구부를 알게 된 것이 서울대에 온 동기가 됐다. 그는 고등학교 1학년때 서울대 야구부를 알게 됐다. 그리고 전교 260등으로 입학한 고등학교를 4등으로 졸업해 서울대에 왔다.

이 감독은 "세민이처럼 자신 또는 부모가 야구부에 대한 기사를 읽고 찾아오는 경우가 있다"며 "공부만 하던 친구들이 좋아하는 야구를 전문적으로 도전해 볼 수 있다는 것에 매력을 느끼고, 열심히 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또한 색다른 경험과 매력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지난 2010년부터 올해까지 횟수로는 6년째, 만 5년간 무보수로 서울대야구부 감독을 맡고 있다. 일종의 재능기부다. 무보수임에도 이토록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배경은 두 가지다. 하나는 앞으로 우리 사회 핵심 일꾼이 될 엘리트들이 야구부원 활동을 통해 팀워크를 배우고 바른 생각을 가졌으면 해서다. 또 다른 하나는 이를 통해 우수한 인재를 육성해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국무총리와 같이 야구를 좋아하는 사회 지도자가 나오길 바라고 있다.


이 감독은 "야구는 꾸준하고 성실한 반복 훈련을 통해 성과를 거두는 스포츠이며 동시에 팀이 하나가 돼야 승리할 수 있다"며 "공부는 잘해도 남과 어울릴 줄 모르는 학생들이 부쩍 많아지고 있는 요즘 직접 참여함으로써 배우는 것이 많다"고 설명했다.

곧 일흔을 바라보는 67세 노인이지만, 또 과거에 LG, 한화, 우리 히어로즈, 오비(현재 두산) 등 프로야구 팀에서 20년동안 감독으로 활약했다고 감독으로 앉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감독은 야구부 훈련이 있는 날이면 연습시간 3시간 전부터 학교에 출근해 연습 준비를 위해 운동장에 물을 뿌리고, 운동장에서 아이들을 직접 지도하고 있다. 주4회, 매회 6시간씩 잡으면 1년이면 1080시간(방학 제외), 5년이면 5400시간을 할애해 온 셈이다.

이 감독은 "처음 자갈밭이었던 체육대 보조운동장에서 코가 깨져가며 연습하고 게임을 하는 선수들을 보니까, 내가 도움을 주면 더 재미있게 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 감독직을 자처했다"며 "이후 이곳을 떠나는 날까지 야구부원들이 진정한 야구팬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기로 맘먹었다"고 말했다.

지난 5년동안 이 감독이 앞장서 돌을 줍고, 정비를 거쳐 슬라이딩을 해도 다치지 않을 정도로 그라운드 상태가 만들어졌다. 덕분에 야구부원은 물론이고 서울대학내 야구동아리 1000여명이 연중 야구리그와 연습을 하는 소중한 공간이 됐다. 이러한 노력은 공감을 이끌어내 서울대가 3억원을 들여 안전한 야구펜스를 설치했다. 풍산그룹 류진 회장은 강의를 마친 후 주로 늦은 시간에 연습을 하는 야구부원과 학생들을 위해 2억5000만원을 기부해 야간 조명을 설치했다.

서울대 야구부 이광환 감독 인터뷰

◇사재를 털어 '야구박물관'도 설립
이광환 감독은 서울대 야구부 외에도 한국프로야구위원회(KBO) 육성위원이면서 유소년 스포츠, 여자야구, 티볼(투수 없이 하는 간이 야구) 등 야구 저변 확대를 위한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신념과 열정이 없다면 이 모든 일을 꾸준히 수행해 나가는 것이 결코 녹록치 않다. 인기 스포츠인 프로야구의 발전 뿐 아니라, 국민체육으로 널리 사랑받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는 "프로선수처럼 플레이 할 수 없지만, 야구를 직접 하나의 스포츠로 즐기다보면 신체와 마음이 모두 즐거워진다"며 "선진국에서는 생활체육이나 클럽 활동이 건강한 사회 분위기와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이 감독은 이러한 공익을 위한 활동 뿐 아니라, 지난 1995년에는 사재를 털어 '야구박물관(현재 한국야구명예의전당)'을 설립하기도 했다. 후에 보다 체계적인 관리를 희망해 서귀포시에 기증한 각종 야구 관련 기념물 약 3000점은 당시 기준으로 약 30억원 가치를 인정받았다.

한국 야구는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고, 지난 21일에도 프리미어12에서 세계적인 강호 일본과 미국을 준결승전과 결승전에서 차례로 이기며 세계 최강 실력을 입증했다. 하지만 한국야구가 세계적으로 품격이 올라가기 위해서는 역사와 전통,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상징적 장소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미국 메이저리그나 일본 야구를 보면 지역팀도 박물관을 운영하는 곳이 많다"며 "사람들은 그곳에서 유물을 구경만 하고 가는 것이 아니라, 정의와 평등을 소중히 여기는 스포츠 정신의 가치와 노력을 통해 인간 한계를 극복해 온 과거들에서 배움을 얻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야구부 이광환 감독 인터뷰

◇실천하며 사랑하며 배우며

뜻 있는 야구 관계자들은 최근 5년간 이 감독이 한결같이 보여주고 있는 실천이 야구계 후배들에게 큰 귀감이 된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대 야구부원들도 선수보다 더 성실하게 연습을 지켜봐주는 노감독으로부터 무엇보다 귀한 가르침을 배우고 있는 셈이다.

지난 21일 서울대야구부를 찾았던 날은 야구부 졸업생과 야구 게임이 있는 날이었다. 비단 이날 뿐 아니라 평소 짬을 내어 야구부 훈련 시간에 나와 펑고를 쳐주거나 연습을 돕는 이들이 많다. 이 감독의 재능기부를 따라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감독은 "일본 도쿄대와 매년 교류전을 갖는데, 일본 기업이 가장 데려가고 싶은 인재로 도쿄대 야구부 선수와 매니저를 꼽는다. 단체생활과 배려가 체화됐기 때문"이라며 "야구부원들이 자신의 동료를 아끼고 또 자기 받은 것을 나누려는 모습을 보일 때 보람을 느끼고 그런 인재상이 널리 전파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그의 꾸준한 재능기부가 수억원의 금전적 기부를 넘어서는 가치를 갖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