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서거]'마지막 귀가'한 YS…상도동 주민들 "잘가십쇼"

김영삼 전 대통령의 국가장 영결식이 국회에서 엄수된 26일 고 김 전 대통령의 유해를 실은 운구행렬이 서울 상도동 자택에 도착, 영정 사진을 든 장손 김성민 씨가 자택을 둘러본 뒤 나서고 있다.2015.11.26/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좋은 분이셨는데, 100살까지 사셔야 하는데 벌써 가시면…. 안녕히 가세요."


26일 오후 4시 10분 서울 동작구에 위치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저. 운구차량인 검은색 에쿠스가 비상등을 깜빡이며 골목길로 천천히 들어왔다. 영하의 날씨에 거리를 꽉 채운 상도동 주민들은 자리를 떠날 줄 모르고 운구차량을 지켜봤다. 한 주민은 까치발을 들고 "봐야 하는데, 키가 작아서 잘 안 보인다"며 안타까워 하기도 했다.

운구차량 조수석엔 국회로의 '마지막 등원'인 영결식을 마치고 온 김 전 대통령의 영정이 놓였다. 46년간 김 전 대통령의 민주화 운동부터 대통령 당선까지 함께 했던 상도동 사저는 고인의 마지막 귀갓길을 배웅하기 위해 문이 활짝 열렸다.

장남 김은철 씨의 아들이자 김 전 대통령의 손자 김성민 군이 할아버지의 영정을 들고 그 뒤를 차남 현철 씨와 유족 15명이 뒤따랐다. 평소 고인이 걸었을 15개 계단을 유족들은 천천히 올라갔다.

고인의 영정은 평소 잠을 청했을 안방으로 먼저 들어갔다. 유족들은 영정을 들고 1분간 천천히 방을 돈 후 건너편 주방과 거실을 돌아 나왔다. 거실에는 고인이 평소 앉던 ㄷ자 모양의 소파가 놓여 있었다. 한 개 짜리 상석 소파 뒤편에는 고인의 좌우명으로 직접 쓴 '송백장청(松栢長靑): 소나무와 잣나무는 오래 푸르다'의 한자 현판이 걸려 있었다. 소파 왼편에는 김 전 대통령이 직접 연설하는 모습이 담긴 흑백사진이 영정을 맞았다. 소파 오른편엔 미국 부시 전 대통령 부자와 함께 찍은 기념사진이 걸려 있었다.


약 5분 동안 집안을 천천히 둘러본 고인의 영정은 다시 운구 차량인 에쿠스에 올랐다. 주민들은 상도동 사저를 떠나는 고인의 마지막 길을 눈물로 배웅했다. 곳곳에서 "안녕히 가세요", "잘가세요"란 배웅 인사와 훌쩍이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안경을 벗고 눈물을 훔치던 김상려씨(75, 여)는 "이사온지 2년 밖에 안됐지만, 이곳에 김영삼 전 대통령이 산다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모른다"며 "서민인 제가 많은 것도 모르지만, 좋은 분이셨고 정치를 잘하셨다. 자식들도 슬퍼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씨와 함께 나온 손녀딸들은 추위로 빨개진 손에 국화꽃다발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운구차량은 상도동 사저를 떠나 서울 동작구 김영삼도서관 인근 도로로 향했다. 운구행렬을 보려는 시민들로 발딛을 틈이 없었다. 영하의 날씨에도 도로는 물론 도서관 2층 발코니나 반대편 경사면까지 인산인해를 이뤘다.

오후 4시쯤 김 전 대통령 영정 사진이 세워진 검은색 에쿠스 승용차가 들어오자 시민들은 팔을 높이 들고 휴대폰 카메라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이어 운구차가 도서관 앞에 서자 일부 시민들은 묵념을 이어가기도 했다. 한 시민은 "잘가십쇼. 편하게 가십쇼"라며 목소리를 높였고 "편히 가세요"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상도동 주민 한모씨(58, 여)는 "생전에는 IMF 등 과실만 부각되다 서거를 계기로 공까지 균형있게 다뤄진 듯하다"며 "김 전 대통령이 재조명된 점에 대해 같은 상도동 주민으로서 뿌듯하다"고 말했다.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노모군(17)은 “김 전 대통령께서 장애를 극복하고 열심히 살라고 조언해줬다”며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아쉬워했다./사진=이원광 기자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노모군(17)은 2009년 고구동산에서 김 전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을 들고 나왔다. 노군은 "김 전 대통령께서 장애를 극복하고 열심히 살라고 조언해줬다"며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아쉬워했다.

주민은 물론 도서관 인근 상점직원들까지 작업복 차림으로 도로로 나왔다. 인근 직장에서 근무한다는 최모씨(27, 여)는 "대통령이 돌아가셨다고 해서 나왔다"며 "대통령 영결식에는 처음 나와본다. 너무 춥지만 참아야지 않겠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