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의 플랫폼]난민으로 살아가는 동포 고려인의 삶의 노래

일제강점기(1910-1945)와 한국전쟁(1950-1953)을 전후로 하여 수많은 한민족의 인구이동이 일어났고, 현재 이들은 난민이 되어 오늘날 한인 디아스포라(diaspora)로 해외 각지에서 흩어져 살고 있다. 약 750만이 넘는 해외이주자들 중에서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강제이주를 당한 고려인들과 한국전쟁으로 인해 북한에서 남한으로 이주한 사람들,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압박을 피해 북만주로 이주해 간 중국동포들을 난민으로 분류할 수 있다. 1965년경에 브라질, 파라과이 등 남미로 이주해 간 동포들도 자신들은 난민이 된 한인들의 후예라고 믿고 있다. 추방정책이나 이주는 고대시대부터 삼국시대 이전에도 그리고 이후 왕국이 멸망할 때마다 행해졌고, 한민족은 난민이 되어 세계 각 지역으로 흩어져나가게 되었다.


1863년 이후에 가난과 기근을 피해 함경도지방에서 현재 극동 러시아지역인 연해주지역으로 이주한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들을 고려인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들은 1937년 소비에트 시대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에 의해 연해주에서 강제추방을 당하게 되어 우즈베키스탄 , 카자흐스탄, 키르키스탄, 타지키스탄 등의 중앙아시아 국가로 이송되었다. 소련은 초가을에 불과 일 주일 정도의 시간을 남겨 놓고 고려인들에게 강제 이주를 준비하라고 명령했다. 강제이주의 이유는 일본인과 종족이 비슷했기에 적을 구별하기에 혼란을 유발했고, 또한 일본인과 더욱 친밀했던 친일파가 있다면 자신들의 전쟁에 불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고려인들은 집과 가구, 소와 돼지들을 모두 버리고 헌 재봉틀과 옷가지 등 간단한 짐만을 챙겨 떠나게 되었다. 약 한 달 반 동안 우마차와 기차를 타고 약 20만 명의 한민족이 중앙아시아로 이동하였다.

이동하던 중에 기차 안에서 수많은 어린이와 노약자가 숨을 거두었다. 카자흐스탄에 거주하는 리소냐 할머니의 증언에 의하면 그녀의 갓난아기는 기차에서 죽었으며, 러시아 군인은 죽은 아기를 바구니에 수집하여 창밖으로 버렸다고 한다. 이러한 비극적인 과거를 가진 여인도 그녀의 슬픔과 기쁨을 노래하며 머나먼 타국에서 한평생 살아왔다. 필자가 고려인들로부터 들은 증언 중에 가장 충격적인 이야기는 10여 명의 남자들이 기차의 쉬는 시간에 모여서 식사를 하고 “고향산천을 떠나서 낫 설은 타향에” 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러시아 군인이 이를 집단 데모로 오인해서 총격을 가해 모두 죽음을 당했다는 증언이다.


이런 소름 끼치게 슬픈 현실을 그들은 어떻게 이겨냈을까? 고려인들은 슬플 때에도 기쁨을 노래하면서 삶을 살아온 흔적이 있다. 그리고 그 흔적은 노래책에 남겨져 있다. 그들에게는 모국어를 잊지 않기 위하여 순 한글로 노래책을 만들어 집집마다 전승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한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꼼꼼하게 노래책을 기록하여 이웃과 나누어 보면서 함께 노래하며 춤을 추었다. 특히 돌이나 결혼식, 환갑잔치 날에는 자녀들이 곱게 차려입고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여 손님을 초대하고, 가수를 불러 춤을 추고 노래를 했다. 이때에 어린아이들은 한국 노래와 춤을 듣고 배웠다.

그중 하나인 <타령아리랑>은 기존의 노래를 우즈베키스탄 스베르드로프의 소인예술단 지도자로 활동하던 김형수가 재구성한 곡이다. 김형수는 <아리랑> 노래의 선율과 가사를 자신들의 처지에 맞게 고쳐서 새로운 노래를 만들었고 집단농장에 거주하는 소인예술단원(아마추어 예술단원)에게 직접 피아노를 치며 지도했다. 이 곡은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 주제곡 아리랑>과 동일한 선율을 단조로 부른 것이다. 자신들의 슬픈 처지를 표현하고자 했는지 단조로 노래함으로써 처량함을 호소한다.




해외 동포 고려인의 노래가사에서는 그들이 살아온 역사의 숨결이 있다. 또한 노래 속에는 한민족의 낙천성과 근면성이 깃들어 있다. 자신보다 조국을 사랑하는 청년들의 의지를 담은 독립운동가, 교가 등이 있고, 사랑하는 부모를 떠나서 눈물 흘리며 그리움을 노래한 <이별의 노래>가 있다. <글자풀이>와 같은 곡에서는 새로운 가사를 붙여 과거 봉건주의 체제 속 하인의 위치에서 자유인이 되는 인간해방의 기쁨을 노래하기도 했다.

세계에 거주하는 해외 750만 동포는 대한민국과 튼튼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고려인 3-4세들이 한민족 전통문화의 뿌리를 배우기 위해 모국 방문을 열망하고 있음은 그들의 마음의 고향이 한반도에 위치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는 고려인 후손들을 따뜻하게 맞이해 주고 그들에게 문화적, 교육적 해택을 주길 희망하며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