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주 매물공백, '빈집공략' 나선 큰 손들

"9~10월 개별주가 득세하는 장세에서 소외된 대형주들을 찾는 큰 손 고객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평소 관심을 두고 있던 기업들 중 가격매력이 커진 트렌디한 종목들을 중심으로 저가매수에 나선 것입니다."(서재연 KDB대우증권 PB클래스 갤러리아점 이사)


증권가 개미투자자 중 일부 큰 손들이 연말을 맞아 기관과 외국인의 매도공세로 주가가 빠진 저평가 대형주를 중심으로 사냥에 나선 모습이다.

2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SK는 지난 27일 증시에서 2.6% 오른 27만6000원에 마감하며 5거래일째 상승세를 이어갔다. 지난 16일 코스피가 1940선 초반까지 밀리며 월중 저점을 찍은 날로부터 9거래일간 상승률이 14.29%에 이른다. 같은 기간 코스피 상승률(+4.42%)이나 SK가 편입돼 있는 코스피 서비스 업종지수(+6.71%)에 비해 훨씬 높은 상승률이다. SK의 경우 지난 8월 하순 코스피가 1800선에서 현재까지 올라오는 동안 기관과 외국인의 매물폭탄이 쏟아진 종목이었다.

이처럼 기관·외국인 등 주요 매매주체들의 외면 속에서 상승탄력이 강했던 종목들의 배경엔 '빈집털이'에 나선 개미들의 활약이 있었다는 관측이다. 매도공백이 생긴 상황을 큰 손 개미들이 저가매수 기회로 삼았다는 얘기다.

지난 9월초부터 최근까지 약 3개월간 기관이나 외국인, 양측 모두의 순매도 상위종목에 이름을 올렸던 CJ와 GS리테일, KCC, 두산인프라코어, 롯데칠성 등도 마찬가지다. 이들 종목은 최근 10거래일간 낮게는 4%대에서 높게는 16%대에 이르는 상승률을 기록한데다 개미들이 이달 들어 주목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 증권사의 PB는 "대박을 노리고 개별종목을 중심으로 단타매매를 하는 투자자들과 달리 큰 손 개미들은 은행수익률이 3~4배 정도만 노리고 진입하는 경우가 많다"며 "가격측면에서 단기박스권 하단에 놓인, 수급에서도 외면된 종목들이 이들의 주 관심권에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저평가 대형주의 경우 중소형주에 비해 손실가능성이 더 낮다는 점에서도 안정적"이라며 "연말 결산을 앞두고 배당성향이 높은 대형주로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큰 손 개미들이 저평가 매력과 배당 외에도 저평가 대형주를 주목하는 이유는 하나가 더 있다. 바로 주식거래 양도세 부과대상이 크게 확대된 점이다. 중소형주 위주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있던 개미들이 양도세 폭탄을 피하기 위해 대형주로 갈아타고 있다는 것.

서재연 이사는 "본인 보유분 외에 친인척 보유주식까지 합해서 과세가 되기 때문에 중소형주를 팔고 저평가 대형주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바꾸는 고객들이 많아졌다"며 "수익이 난 중소형주를 팔고 대형주 중에서도 섹터 내에서 저평가된 종목을 찾아 매수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미국 금리인상 이슈 등 굵직한 이벤트들을 앞두고 시장에 대한 낙관이 약해진 상황에서 저평가 대형주에 대한 추종매매에 나서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큰 손들의 대형주 매수가 현재 시장의 주류는 아니라는 지적이다.

김영화 NH투자증권 PB는 "내년 시장흐름에 대한 약세전망이 우세한 상황에서 저평가됐다는 이유로 대형주를 적극 매수하는 이들은 아직은 소수에 불과하다"며 "그나마 관심권에 있던 대형주가 상당부분 올랐다는 점도 부담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