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필연적으로 품고 가야 하는 가시 같은 존재

/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

‘무병장수’란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무병하면 장수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건강을 자신해서 관리하지 않다가 병마를 만나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 하고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온 말이 ‘일병장수’입니다. 평생 품고 가야 하는 큰 병 하나 있어야 건강을 관리하고 장수할 수 있다는 얘기일 겁니다.

우리경제도 오랫동안 잘 나가서, 소위 건강관리에 소홀한 결과로 1997년 경제위기를 겪었습니다. 수많은 기업, 가계 할 것 없이 수많은 경제부문들이 수술대에 올랐고 그 고통은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온 국민이 힘을 모아 고통을 나누며 위기에서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위기관리 덕분에 경제체질은 전보다 건강해졌습니다. 미국발, 유럽발 위기가 전이돼도 체질이 건강해지고 요령도 쌓이다 보니, 전에 비해 간단한 응급조치로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신용카드 대란, 주택시장 광풍, 저축은행 사태와 같이 자극적인 작명으로 경제 위기감이 고조된 것이 ‘일병장수’란 말에서처럼 ‘일병’의 역할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의 한국경제는 전체적으로 경제위기 상황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뭔가 불안감을 떨쳐 버릴 수가 없습니다. 가계부채 규모가 경제활동에 비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도 하고, 우리 경제를 이끌어가는 성장 동력이 힘을 잃고 대외 경쟁력도 소멸되고 있다고 합니다. 노동시장과 금융시장, 그리고 공공부문과 교육부문을 개혁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고도 합니다.

사실 이러한 문제 인식은 현대 경제에서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모두 비슷한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소비와 투자를 진작시키고 고용을 늘리는 것은 눈앞에 직면한 경제정책의 목표입니다. 인프라·연구·교육 투자를 확대하고, 노동참여를 지원하고, 혁신을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미래를 보는 다음 세대를 위한 정책입니다. 환경과 무역의 문제는 모든 나라가 머리를 맞대고 협조하며 관리해야 하는 협동과제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경쟁’이라는 문제가 도드라져 보입니다. 경제위기 극복과정에서 우리 모두가 금과옥조로 여긴 것은 경쟁 촉진이었습니다. 이 ‘경쟁’이라는 것이 경제체질과 역량을 강화하는 것은 틀림없지만 잘 못 사용하면 우리를 지치게 하고 치명적인 병으로 발전할 수도 있습니다.


모두들 뛰니 나도 따라 뛰어야 하는 경쟁은 의미가 부여되지 않아 지치기만 할 뿐 긴 안목으로 계획할 시간도 없고 숨통만 조여 옵니다. 건전한 경쟁의 환경이 조성되지 않으면 경쟁에서 지더라도 승복이 되지 않습니다. 경쟁의 규칙이 불공정하면 승리를 위한 갖가지 수단이 사용됩니다. 경쟁의 무대에서 퇴장한 후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 경쟁은 너무나 냉혹합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은 더 이상 이런 경쟁의 세상에 머무르기를 주저하거나 포기하게 됩니다. 세상을 바꿔야 할 우수한 인재들이 경쟁이 느슨한 곳에서 안주합니다.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아예 경제활동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다른 나라로 떠나려고까지 하는데 이마저도 쉽지 않은 게 육로로는 갈 수 있는 나라가 없고 한국말을 사용하는 다른 나라도 없습니다.

경제학은 인간이 노동소득이라는 예산제약 하에서 소비와 여가를 극대화할 때 행복해진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학문입니다. 경제학이 이론과 통계를 중시하므로 차갑다는 선입견과는 달리 따뜻한 학문이지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대출까지 포함해도) 예산제약에 걸려 행복을 추구할 여력이 없습니다. ‘안정적인’ 노동소득이 보장돼 있지 않으니 예산제약 자체가 삶의 목적함수가 돼버렸습니다. 이렇듯 특히 진입 단계의 노동시장은 경쟁의 정도가 적정 수준을 넘어선지 오래입니다.

반면에 경쟁이 잘 작동하지 않거나 느슨한 부문도 있습니다. 소위 경쟁이 별로 없는 안정된 직업, 근무연수가 늘어나면 급여가 자동으로 늘어나고 성과급 비중이 매우 낮은 직장 소위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기관이 대체로 그렇습니다.

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경쟁은 우리 경제가 필연적으로 품고 가야 하는 ‘가시’같은 존재입니다. 경쟁이 없으면 우리의 자만은 멸망으로 이끌 것입니다.

그렇지만 경쟁이 공정하지 않으면 우리는 좌절할 것이요, 경쟁이 과열하면 우리도 타버릴 것입니다. 우리 경제를 강하게 만드는 요인인 동시에, 우리를 삼켜버릴 수도 있는 ‘경쟁’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건강하면서도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키워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