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불합격한 이유, 정말 직무역량 때문일까

김지예 잡플래닛 운영이사(COO)

2015년 하반기 신입 공채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늦은 회사는 최종 면접을 진행중이고, 많은 회사들은 합격 발표 후 연수 준비에 들어갔다. 이 무렵이 잡플래닛에 면접 후기가 많이 등록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잡플래닛에 있는 면접 후기의 도움을 받아 취업 시즌을 보낸 많은 회원들이 고맙게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는 이타적인 목적만으로 자신의 경험을 공유해주고 있다.


면접 후기들을 분석해 보면 올해의 키워드는 역시 '직무'였다. 실무자 면접으로 불리는 직무적합성 면접이 풍성해지고 어려워졌음을 알 수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면접 난이도가 높을수록, 그리고 합격보다는 불합격자의 면접 후기에서 '직무'라는 단어가 빈번하게 등장했다는 점이다. 어려운 면접에서 떨어진 지원자들은 직무 역량에 대한 질문이 압박면접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신입에게도 상당히 높은 수준의 직무 역량을 원한다는 피드백을 덧붙이기도 했다. 자신의 탈락 이유를 직무역량 부족으로 추측하는 듯했다.

정말 직무 역량이 부족해서 떨어졌을까? 취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기도 하지만 한 기업의 인사권자로서 쉬이 납득되지 않았다. 신입사원에게 기대하는 직무 역량이라는 건 잠재력에 가까운 기본적인 수준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신입사원에게 직무 역량의 발휘나 완결성 있는 업무 수행을 기대하지 않는다. 대신 다양한 교육 기회와 회의 참관, 리서치, 분석 업무 등을 제공한다. 어차피 신입사원은 만 2년 정도는 비용이요 투자의 대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입사원 채용과정에서의 직무 역량은 실제 직무 수행 경험이 아니라 해당 직무를 수행할 수 있을까에 대한 평가 요소라고 보는게 적절하다. 그 자체로 잠재력의 영역이다보니 기준을 높이거나 절대적인 수치로 당락을 결정하는 건 기업 입장에서도 무리수다. 서류를 통과한 수준의 요구 스펙을 갖추었다면 면접에서 직무 역량의 부족이 치명적인 원인이라고 보기 힘들다.

마침 기업의 인사 담당자들을 만날 일이 있어 이 일을 화제로 올렸다. 다들 직무 역량의 부족이 면접에서 떨어지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는게 중론이었다. 그러나 면접이 어려웠다고 생각하는 불합격자들에게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내용이라고 설명하자, 다들 당황하는 분위기였다.


그때 의외의 해석이 나왔다. 직무 역량이 부족한 게 아니라 직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떨어진 것을 오해한 것 아니냐는 거다. 실제로 그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지원자가 생각했던 직무와 실제 기업에서 수행하는 직무의 내용이 달라서 지원자가 준비했던 내용이 무용지물이 되면서 탈락했다는 이야기다.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모르고 온 지원자를 합격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역량이 아니라 이해도가 문제였다면 상황이 납득이 된다. 함께 있었던 인사 담당자들 역시 직무를 제대로 모르고 와서 불합격한 경우는 제법 되는 편이라며 해석에 힘을 실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취업준비생들 중에는 직무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경우가 많다. 대학에 기업비교분석 특강을 나가 취준생들을 만나 이야기하다 보면, 마케터에 대한 그들의 이해 수준이 대표적이다. 대다수의 취준생들은 마케터의 업무를 창의적이고 이미지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소비재 마케터가 된다면 시장을 세분화하고 제품의 컨셉을 잡고 포지셔닝 작업을 하는거다. 구체적으로는 광고 모델을 정하고 TV 광고 컨셉 등을 결정하는 일을 할거라고 기대한다. 굳이 표현하자면 마케터란 굉장히 ‘PPT’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물론 그런 일도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업의 마케터가 하는 일은 ‘PPT’보다는 ‘엑셀'에 가깝다. 제품의 컨셉보다 중요한 건 시장 점유율이요, 마케팅 비용과 수익성 사이의 상관 관계이다. 사내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숫자를 다루는 직무 중 하나가 마케터이며, 엑셀도 아니고 통계 프로그램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마케터들도 흔하다. 온라인 마케터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잡플래닛의 마케팅팀은 SNS 채널에서 컨텐츠를 통해 마케팅 플랜을 전개하는데, 가장 중요한 건 마케팅 효율이다. CPC, CPA, 전환률 같은 숫자 덩어리들이다.

이러한 문제에는 기업에도 책임이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유독 직무 설명(JD)에 박한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 채용 공고와 외국 기업 채용 공고만 비교해봐도 알 수 있다. 국내 기업의 채용 공고에서 가장 많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건 자격 조건이다. 반면 외국 기업의 경우에는 직무 설명이다. 충실히 설명해주지 않았으면서 제대로 모르고 온다고 지원자만 탓할 일은 아닌 셈이다.

취준생들에게는 조금 수고스럽더라도 채용설명회나 상담을 통해 충분한 직무 이해부터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만일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외국 기업들이 해당 직무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직무 이해에 도움이 된다.

◇김지예 잡플래닛 운영총괄이사(COO)는… 2013년 황희승, 윤신근 공동대표와 함께 잡플래닛을 공동 창업했다. 창업 이전에는 세계 최대 소셜커머스서비스 그루폰의 한국지사에서 COO로 재직했다.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으며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원으로도 활동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