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괄공시, 고질적인 내부정보 주식거래 막을까

/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

연초부터 콜마비앤에이치 (15,260원 ▼120 -0.78%)의 내부 합병정보를 이용한 불공정거래와 관련해 모증권사 부장이 구속되면서 증권업계가 뒤숭숭하다. 지난해는 한미약품 (315,000원 ▲500 +0.16%)의 신약기술 내부정보를 이용한 불공정거래로 연구원과 애널리스트가 구속됐다. 콜마비앤에이치나 한미약품은 모두 10배 이상 올랐으나 일반투자자는 철저히 소외되고 이용 당했다.

일반투자자들은 거짓 정보를 이용한 부정 세력보다 콜마비앤에이치나 한미약품 처럼 내부 미공개정보를 이용한 불공정 세력에 더 분노한다. 전자는 범죄자에게 사기를 당한 것으로 간주하여 자신의 어리석음을 반성하는 계기라도 되지만, 후자는 게임 규칙의 공정성을 위반했기에 억울함과 분노를 감출 길이 없다.


개미들이 주식시장에서 최우선적으로 바라는 것이 있다면 바로 공정 경쟁 보장이다. 자본력과 기업분석력, 매매테크닉, 지원시스템 등을 갖추고 있는 기관투자자나 거액자산가들보다 경쟁에서 뒤쳐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내부정보를 선취하여 불공정거래를 일삼는 것 만큼은 참을 수 없는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이러한 투자자들의 오랜 열망을 반영하여 지난해 12월10일 ‘시장질서 규제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동 방안에서 제시한 5대 과제를 살펴보면, 공시관련 방안이 3개(열거주의에서 포괄주의 공시 체계로 전환, 기업공시종합시스템 구축, 기업 지배구조정보 공시 도입)이고 나머지 2개(불공정거래 조사체계 정비, 시장질서 교란행위 제도의 시장정착 유도)도 공시제도의 한계를 보완한 방안으로 볼 수 있다.

상기 방안 중에 ‘종합공시시스템구축’은 제도적인 문제라기 보다는 기술적인 문제이며, ‘지배구조정보공시도입’은 포괄공시체제로 편입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금융위의 선진화 5대 과제의 핵심은 ‘포괄주의’ 공시제도로의 변경을 통한 시장 질서 선진화로 촛점이 모아 진다.


이를 위한 1차적 조치로 한국거래소(KRX)는 지난달 30일 공시규정 개정을 통하여 수시공시 열거항목 중에 포괄조항을 신설함으로써 포괄주의공시를 위한 첫 걸음을 뗐다.

기업공시는 기관에 따라 금융위공시, 거래소공시, 공정위공시로 나뉘는데, 이중 주식투자자들에 가장 의미가 있는 것은 거래소공시 4가지(수시공시, 자율공시, 조회공시, 공정공시) 중에서 주가 영향이 가장 큰 중요정보(material information)를 공시하는 수시(의무)공시이다. 건수도 2014년 한해 거래소공시 총 2만9천 건 가운데 수시공시가 2만2천 건으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번 포괄주의로의 변경은 바로 이 수시공시를 대상으로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수시공시는 중요정보를 54개로 나열하는 열거주의를 채택하고 있으나 이러한 닫힌 틀을 가지고는 복잡하고 다양해진 기업별 투자정보를 공정하고 정확하게 담아낼 수 없는 현실이 됐다. 이미 대부분의 해외 거래소(미국,영국,독일,홍콩,호주 등)는 포괄주의를 채택하고 있으며 일본도 열거주의 원칙 하에 일부 포괄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실정이다.

포괄주의는 중요정보의 범주만 규정하고 구체적인 공시 내용은 기업이 스스로 결정하는 열린 틀이다. 예를 들자면, 현행 세가지 공시사항(유․무상 증자 및 감자결정, 이익소각 결정, 주식분할 또는 병합결정)을 단순화하여 ‘발행주식 수 증감’으로 규정하는 방식이다. 이 예시도 중간단계일 뿐 금융위가 계획한 대로 2018년 완전포괄주의가 도입되면 예시적인 가이드라인만 제시하고 모든 중요 사항의 결정은 기업이 하게 된다.

중요 정보를 기업 스스로 결정 및 공시하고 위반 시 제재 받는 구조는 기업들로 하여금 상당한 부담감을 가지게 할 것이다. 그러나 투명한 공시 활동으로 기업가치를 향상 시키고 시장 질서의 건전성을 제고하는 좋은 계기가 된다. 적어도 열거된 공시 항목과 관련이 없다는 이유로 중요 정보가 누락되거나 왜곡되는 고질적인 부조리는 사라진다.

이런 식으로 누락이나 왜곡된 내부의 중요 정보는 대부분 미공개정보가 되어 부당거래나 불공정거래의 원천이 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이번 포괄주의 도입은 일시적으로 기업을 불편하게 하고 당국의 공시 감독을 어렵게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열거주의가 지닌 제도적 한계를 극복하고 시장의 선진화와 건전화를 앞당기는 중장기적 기반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해외 선진국에 비해 늦은 감이 있으나 기존의 문제점과 선진 사례를 잘 활용 한다면 훨씬 효율적이고 강력한 공시 기틀을 마련할 수 있다. 만성적으로 되풀이되는 뒷북치기 단속 관행도 개선하고, 미공개정보의 2·3차 이용자에 대한 규제 같은 혼란스러운 조치도 필요 없어질 것이다.

금융위는 2016년까지 세분류된 공시항목을 중분류로 단순하게 유형화하고, 2018년에는 완전한 포괄공시를 도입할 계획이다. 그러나 증시 선진화와 건전화가 시급한 상황에서 남은 2년은 길어 보인다. 정책 공급자의 입장에서 완벽을 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책 수요자의 절박함을 고려하여 좀 더 박차를 가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성실 공시 법인을 선별하여 시범적 선행 실시를 유도하고 인센티브를 준다면 시행착오도 줄이면서 조기 정착할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