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더스의 '신평사 비영리화' 공약…얼마나 문제길래

/그래픽=김현정 디자이너

미국 대선 후보 경쟁에서 예상을 뒤엎는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민주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 상원의원이 지난달 5일 뉴욕 타운홀에 열린 유세에서 금융개혁의 일환으로 신용평가회사를 비영리화 하겠다고 공약했다.


사회민주주의자의 터무니 없는 주장으로 치부하기엔 그동안 누적된 신용평가업계에 대한 불신이 너무나 크다. 글로벌 신용평가업의 빅3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무디스(Moody’s), 피치(Fitch) 3사가 월가의 거대자본과 결탁해 자본시장을 왜곡시켜왔다는 의심이 끊이질 않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2007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이다. 미국 금융위기조사위원회(FCIC)와 경제학자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는 빅3의 실패가 금융위기의 주범이라고 결론을 내린 바 있다.

2007년 가을부터 2008년말까지 주택저당증권(MBS)과 채권담보부증권(CDO)의 80%를 최우량등급(AAA)에서 부실등급(junk)로 강등시키면서 전세계 투자자들에게 예기치 않은 천문학적 손실을 입혔다. 이 여파는 지금까지 이어져 전세계의 경제구조가 저성장체제로 고착화 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가장 가까운 예로 대우조선해양의 신용등급이 지난해 7월 이후 불과 3~4개월만에 우량등급(A)에서 투자불가능한 투기등급(BB)으로 강등됐다.


동양, STX, 웅진 등 수년간 투자등급을 유지하다가 회사가 법정관리 신청이나 부도가 발생할 때 비로소 일시에 투기등급으로 추락시키는 관행은 이제 일상으로 느낄 정도로 부지불식간에 투자자들의 인식이 마비돼 버렸다.

우리나라 신용평가사에 대한 신뢰가 이렇다 보니 대부분의 금융기관과 기관투자자들은 오래전부터 신용평가부서를 별도로 두고 자체 기업등급을 산정해 신용평가사의 등급보다 우선적으로 적용해오고 있다. 결국 정보력과 분석기능이 없는 일반투자자들만 자본시장의 피해자로 내몰리는 현상이 벌어진다.

신용평가업에 무슨 문제가 있길래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많은 전문가들이 신용평가업의 비즈니스모델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즉 회사채나 기업어음 등 유가증권을 발행하는 주체가 평가등급을 의뢰하고 신용평가사에 수수료를 지불하는 발행자 수수료 지급(issuer-pay) 모델은 필연적으로 이해상충(conflict of interest)을 야기하므로 공정하고 정확한 평급평정이 원천적으로 어렵다.

평가등급은 발행회사의 금융비용을 좌우한다. 예를 들어 2년 만기 회사채 100억원을 발행하는 기업이 A-등급 대신 한등급 낮은 BBB+등급을 받게 되면 금리가 2.1%포인트(2월1일기준)나 높아져 3년치 이자비용으로 4억2000만원을 더 부담해야 된다.

따라서 발행사는 등급을 좋게 주는 신평사를 찾아다니는 등급 쇼핑 현상이 일어나고, 신평사는 경쟁적으로 등급을 올려주는 등급 인플레이션 현상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런 폐해는 신용평가사의 비즈니스 구조를 투자자가 수수료를 지급하는 모델(subscription model)로 바꾸더라도 특별히 나아질 것은 없다. 발행자에서 투자자로 이해상충의 당사자만 바뀔 뿐 마찬가지 현상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에 있는 10개 신용평가사 중에 투자자 수수료 지급 모델을 사용하고 있는 회사는 Egan-Jones Rating Company 하나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러한 원천적인 이해상충 문제 때문에 신용평가업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렵고 자본시장의 왜곡이 불가피하다는 진단이 이번 샌더스 상원의원으로 하여금 신용평가사의 비영리화라는 극단적인 개혁안을 선택하게 만들었다.

신용평가사의 비영리화는 영업과 수익에 대한 압박을 벗어나 보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등급평가를 기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비영리 조직의 타율성과 보수성으로는 ICT혁명과 더불어 급변하는 금융 및 기업 환경을 따라가기 어려운 원천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

따라서 이번 샌더스의원의 비영리화 주장은 선언적인 효과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일부 비영리화가 가능한 여지가 있다. 부동산평가와 관련하여 공공기관인 한국감정원과 민간평가기관인 감정평가법인이 공존하고 있는 상황을 잘 벤치마크한다면 신용평가업의 30년 묵은 문제를 풀 묘안이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

마침 2월 중에 감독당국이 신용평가업 개선을 위한 태스크포스를 만든다고 한다. 2011년에도 태스크포스를 구성했지만 현재까지 나아진 것이 하나도 없다. 이번에도 기존 3사 체제를 유지하는 지엽적인 개선 방안으로 대충 넘어가서는 등급평가실패로 피해 입은 수많은 선량한 투자자들에 도리가 아니다.

공정성 담보를 위한 비영리 도입 방안, 제4 및 제5의 신평사 투입을 통한 공정 경쟁 강화, 비즈니스모델 다양화 방안 등 전향적이고 전면적인 혁신안이 나오지 않는다면 이번에도 흐지부지되고 말 것이 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