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머니투데이 페이스북 머니투데이 트위터
통합검색

오늘의 증시

오늘의 증시
코스피 코스닥 원/달러
2339.17 827.84 1115.30
▲15.72 ▲6.71 ▼5.1
메디슈머시대 (7/6~미정)
블록체인 가상화폐
비평의 플랫폼 관련기사6

[비평의 플랫폼] 천재를 기다리지 않는 사회

<26>

비평의 플랫폼 머니투데이 최진석 문학평론가 |입력 : 2016.02.12 08:59
폰트크기
기사공유
편집자주그림을 토해낸다는 것은 혼자만의 배설이 아닌 소통하는 일이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옷 보따리, 책 보따리와 화구 보따리를 싸서 서울로 가출했던 그 어느 날. 이제 그때 쌌던 옷 보따리와 책 보따리와 화구 보따리를 풀어보려 한다. 독자들도 그 보따리를 함께 풀고 그 안에 무엇이 들었나 함께 보길 바란다.
장면 하나. 여섯 살에 정보처리기능사 최연소 합격, 일곱 살에는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고입검정고시에 합격. 곧이어 대학에도 최연소로 합격하지만 중퇴한 후, 학점은행제도를 통해 컴퓨터공학 학사학위 취득. 그리고 역시 최연소로 과학기술대학원 천문우주과학과 석박사과정 입학... 하지만 화려한 이력으로 쌓아올린 ‘천재’ 소년의 이야기는 절정을 맞이하기도 전에 검댕이 얼룩이 묻어버렸다. 저명한 외국학술지에 게재한 논문에 표절의혹이 제기되면서 철회되는 수모를 당하고, 언론과 사회의 뭇매를 맞은 것이다.

장면 둘. 유학생 출신의 한국 소녀가 수학분야에서 최상의 기량을 발휘하여 ‘명문’ 하버드와 스탠포드에 동시 합격. ‘천재’ 소녀를 놓칠 수 없다고 판단한 두 학교는 교환교육 프로그램을 특별히 설치해서 동시 재학할 수 있는 특전을 베풀기로. 세계의 석학들이 앞다퉈 그녀와 만나보길 원하고, 페이스북 창업자인 저커버그도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며 만남을 요청... 며칠을 연이어 ‘한민족의 쾌거’로 보도된 이 이야기는 대입을 앞두고 심한 압박감에 시달리던 소녀의 거짓말로 들통이 났고, 그녀를 둘러싼 모든 것에 대한 ‘신상털기’가 시작되자 소녀는 결국 병원신세를 지게 되었다.

두 장면 모두 채 1년도 지나기 전에 벌어진 사건들이다. 이 뉴스기사를 접한 후, 왕년에 있었던 유사한 사례들을 금세 떠올린 것은 비단 나만이 아닐 듯하다. 한국사회는 잊을 만하면 곧잘 ‘천재’가 등장했다며 떠들썩하게 판을 벌여왔고, 불행하게도 천재에 대한 기대와 열망은 대부분 실망과 허탈, 냉소와 분노로 급전되는 스캔들이 되어 마감되었다. ‘천재 신드롬’이라고 부를 만한 이런 사태는 한국사회가 병을 앓고 있다는 증거다. 고등교육이 의무화되고 문맹자가 거의 사라진 오늘날에도 우리는 우리를 넘어서는 초월적인 존재를 욕망한다. 천재를 기다리는 사회, 그것이 우리가 사는 현실이다.

천재에 대한 스캔들은 그저 가십거리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사회는 늘 천재라는 신화에 휩쓸려 왔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다. 가령 황우석 박사의 추문을 떠올려보라. 유전자공학이라는 첨단 분야에서 한국인이 세계 1위라는 소문은 얼마나 매력적이던가? 혹은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에 대한 이야기는 어떤가? 국제정치를 대표하는 수장 자리에 한국인이 앉다니! 또는 매번 대선이 가까울 무렵 등장하는 정치의 신예 기수들은 어떤가? 새로운 정치질서를 예고하며 화려하게 등장했다가 사라진 이들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보았던가? 그들은 항상 우리가 기다리던 천재의 형상으로 나타나지 않았던가.

천재는 어디에나 있고 언제나 있었다는 뻔한 소리를 늘어놓으려는 게 아니다. 문제는 천재를 기다리는 사회의 심리, 그 의식의 이면에 깔린 무의식이다. 천재를 통해 우리가 욕망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사회는 전체라는 구조를 이룬다. 한 사람의 재능이 아무리 풍부하고 강력해도 개인의 힘만으로 사회는 변화하기 어렵다. 사회가 부패하고 무능력하고 쇠퇴일로에 있을 때, 개혁과 재편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는 한두 개인의 힘으로 될 일이 아니다. 단호한 결단과 비전이 필요할 때 정말 애써 구해야 하는 것은 사회구성원 전체의 쇄신에 대한 의지와 노력이지 천재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 천재를 기다리며, 천재가 우리를 대신해서 이 모든 무질서와 패악을 바로잡아주길 원한다. 정치, 외교, 학문, 예술, 일상의 전 부문에 걸쳐 해프닝처럼 벌어졌다 사라지는 천재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런 욕망을 거꾸로 되비쳐 주는 것이리라. 제발 천재가 등장해서 이 모든 잘못된 것을 올바로 세워달라는.

논점은 천재에 대한 기다림의 이면이다. 익숙하고 정체된 삶을 과감히 떠나서 새로운 삶을 만드는 것, 그러한 비전을 우리는 욕망한다. 하지만 누가 그 과제를 떠안을 것인가? 천재일까, 우리일까? 어쩌면 천재는 우리 자신의 책임을 떠넘기려는 핑계거리가 아닐까. 천재의 화려한 이미지를 만드는 것은 우리의 비겁과 무책임이 아닐까.

천재는 소문이다. 시민에 대한 공공교육이 불충분하고, 시민으로서의 자의식과 책임감, 실천이 부족할 때 유포되는 신화다. 천재에게 기대하고 욕망하는 것은 대개 우리 자신이 원하는 것이거나 아직 하지 않고 있는 일들이기 십상이다. ‘어느 날 갑자기’ 천재가 나타나 우리 삶을 바꿔주길 바란다면, 지금부터 우리 자신의 팔을 걷어부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따지고 실천하는 게 더 빠른 길이다. 천재를 기다리지 않는 사회, 그런 사회만이 진정 자신을 변혁의 길로 인도할 수 있다.

[비평의 플랫폼] 천재를 기다리지 않는 사회

  • 0%
  • 0%


오늘의 주요뉴스




종료된칼럼

베스트클릭

실시간 급상승

10.0초

5분간 수집된 조회수 기준

오늘의 운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