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금고 속으로 숨는 5만원권…‘돈맥경화’ 부추겨

머니투데이

유엄식 기자

인천지검특별수사팀이 지난 2014년 7월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별장에서 찾아낸 현금다발을 공개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스1

#수십억대 자산가 A씨는 2013년 정부의 차명계좌 및 증여세 과세강화 방안이 발표되자 아들명의 계좌로 넣으려던 5억원을 5만원권과 금으로 바꿔 집 앞마당에 묻었다. 연 2%도 안되는 이자를 포기하는 대신 추후 최고세율 50%에 달하는 상속·증여세 폭탄을 피하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다.

◇꽁꽁 숨은 신사임당, 돈 풀어도 돌지 않는다=지난 7년간 한국은행은 시중에 22억장이 넘는 5만원권을 방출했다. 그러나 이 가운데 12억장 넘게 회수되지 않았다. 이 기간 화폐발행잔액 30% 미만이었던 5만원권 비중은 2015년말 78%로 급등했다. 1만원권이 주류였던 2009년 37조4000억원이었던 화폐발행잔액은 2015년말 86조7500억원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이처럼 시중에 유동성이 대폭 풀렸지만 돈이 유통되는 속도는 오히려 둔화됐다. 시중통화량(M2)을 본원통화(중앙은행이 공급한 통화)로 나눈 수치인 통화승수는 지난해 19.04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1999년 30을 넘었던 통화승수는 하락세를 이어갔고 2014년에는 19.65로 처음으로 20 밑으로 떨어졌는데 지난해에는 이보다 더 떨어진 것이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말 단기 부동자금은 931조3000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17.2% 증가한 것이다.

◇한국 지하경제 비중, 다시 상승세= 5만원권 발행을 전후로 지하경제 규모가 증가한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최근 경제인문사회연구회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지하경제 규모 추정방법과 추정치의 국제비교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우리나라 지하경제 규모는 446조5100억원으로 GDP(국내총생산)의 30.1%를 차지했다.

외환위기가 발생한 1998년 GDP 대비 57.3%까지 치솟았던 지하경제 비중은 신용카드 소득공제, 금융실명제, 현금영수증제도 등이 정착되면서 2006년 25.9%로 축소됐고 2009년 24.5%로 저점을 찍은 뒤 다시 상승세다. 정부는 그동안 국내 지하경제 규모를 20% 중후반대로 추정했다.

이를 고려하면 이번 분석결과는 지하경제 규모가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는 점을 드러내는 셈이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5만원권 환수율 하락은 경제주체들 지갑이나 금고 등 어딘가에 고여 있는 현금이 많기 때문”이라며 “우리나라 지하경제 규모가 5만원권이 발행된 2009년 하반기부터 높아졌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이 기사는 빠르고 깊이있는 분석정보를 전하는 VIP 머니투데이(vip.mt.co.kr)에 2016년 2월 18일 (18:53)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