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머니투데이 페이스북 머니투데이 트위터
통합검색

오늘의 증시

오늘의 증시
코스피 코스닥 원/달러
2082.58 690.81 1125.80
보합 17.98 보합 11.32 ▼2.8
-0.86% -1.61% -0.25%
메디슈머 배너 (7/6~)조 변호사의 가정상담소 (10/18)
블록체인 가상화폐
비평의 플랫폼 관련기사6

[비평의 플랫폼] 어머니의 천재

<27>

비평의 플랫폼 머니투데이 김지훈 기자 |입력 : 2016.02.19 07:03
폰트크기
기사공유
편집자주‘비평의 플랫폼’은 공연, 전시, 출판, 미디어에 대한 리뷰와 더불어 우리 사회의 이슈를 문화비평의 시각으로 의미를 분석하고 실천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코너입니다. 각 분야 비평가들의 깊이 있는 시각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비평의 플랫폼’은 인천문화재단이 발행하는 격월간 문화비평웹진 '플랫폼'(platform.ifac.or.kr)에 게재된 글을 신문기사의 형식에 맞도록 분량을 줄인 글입니다. '플랫폼' 홈페이지에 오시면 전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비평의 플랫폼] 어머니의 천재
천재라는 말 속에는 하늘이 들어 있다. 그 하늘이라는 말 속에는 불가항력이라는 뉘앙스가 여실하다. 그런데 천재라는 뉘앙스를 둔재라는 말과 동격(同格)으로 써보면 어떨까. 나는 둔재 속에 든 천재와 살았다. 진짜 천재는 제 둔재를 알아가는 속에 있을지 모른다.

나에게 천재는 어머니다. 어머니는 내게 다시없는 천재였다. 어머니는 내가 중학교 다닐 때까지도 한글을 잘 몰랐고 그래서 내가 천천히 한글을 가르쳐 드렸다. 어머니는 천주교 신자인데 그제야 큰 글씨의 성경을 읽으시기 시작했고 삐뚤빼뚤 성경 구절을 공책에 베껴 쓰기 시작하셨다. 글씨 쓰는 속도가 굼뜨고 그 글씨들은 하나같이 투박하여 영악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당신의 글씨와 글 속에서 나는 모종의 진솔함이 감도는 것을 잊을 수가 없다. 모양이 찰떡같기도 하고 인절미 같기도 하며 장독의 간장독에 넣는 둥근 동돌 같기도 했다. 때론 화단을 슬며시 넘어가는 채송화의 미소 같기도 하였다. 그렇게 어머니는 하느님과 질박하게 내통했다.

[비평의 플랫폼] 어머니의 천재
어머니는 손이 컸다. 요즘은 손이 크다는 말을 잘 쓰지 않지만 어머니는 주위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주기를 좋아하셨다. 집안이 그리 넉넉하지 않았지만 소소한 것이라도 넉넉히 주지 않으면 마음이 기껍지 않은 성정을 지니셨다. 비록 속고쟁이를 헝겊을 대고 기워 입으실지언정 남에게는 머드러기를 먼저 건넸다.

그 베푸는 손이 조용했고 조금 환했다. 울타리에서 딴 애호박은 대나무 채반에 얹어 이웃 할머니에게 건넸던가. 오리(五里)가 넘는 성당을 걸어 다니시며 아끼신 돈으로 아들의 용돈을 주셨다. 십여 통이 넘는 양봉(養蜂)을 하셨다. 수없이 벌에 쏘이면서도 큰 내색 한 번 없이 묵묵하셨다. 벌에 쏘인 손이 벙어리장갑을 낀 것 마냥 퉁퉁 벌겋게 부어올랐다. 그럼에도 봉침(蜂鍼)을 맞은 거라며 맑고 쓸쓸하게 웃으셨다. 그런 어머니의 양봉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일요일의 벌통 주위를 지키는 것이었다. 벌들을 잡아먹는 일명 왕퉁이라는 말벌의 습격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어머니가 완행버스를 타고 삼십 여 분 거리의 읍내 성당에 가시면 나는 나무의자에 앉아 벌통을 지켰다. 내 손에는 매미채가 들려 있었다. 말벌이 한 번 습격하면 벌통은 거의 초토화됐다. 말벌이 오면 날래게 매미채를 휘둘러 녀석을 잡아 땅바닥에 놓고 짓이겼다. 어머니가 애지중지 치시는 벌들을 지켜야지만 가을의 꿀을 기약할 수 있었다. 살림에 보태려고 아무런 지식이나 기술이 없는데도 손수 벌을 치셨다. 학교 소사아저씨의 은근한 질시와 멸시를 감내하며 양봉기술을 체득해 나가신 것이다.

봄가을로 꿀을 땄다. 더러 악착같이 달려온 벌들이 제 꿀 속에 빠져 헤매기도 했다. 요즘처럼 계량화된 꿀 병이 없던 시절이라 정종병을 세척해 거기다 꿀을 담아 팔았다. 겨울철 흰 가래떡을 꿀에 찍어먹으면 바깥의 황소바람 소리가 덜 삭막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방바닥에 엎드려 겨울잠에 든 벌들의 안부를 궁금해했다. 저 녀석들 바깥엔 맹추위와 눈보라가 살벌한데 그 좁은 벌통 속에서 겨울 소일거리가 무얼까 해찰을 떨기도 했다.

[비평의 플랫폼] 어머니의 천재
어서 봄이 와 아카시아 꽃이 하얗게 피면 벌통을 그 산자락에 갖다놔야지 생각을 했다. 어머니는 그런 겨울이면 말린 호박꼬지와 서리태를 넣고 백설기를 쪄주셨다. 접시에 바쳐 이웃에 떡을 돌리기도 했다. 김이 펄펄 나는 단맛의 눈보숭이 같았다. 이듬해면 벌통에서 분봉(分蜂)한 벌떼가 집 주변의 고욤나무에 앉아있는 걸 나는 어머니에게 알렸다. 어머니는 보호망을 쓰고 고욤나무에 올라가 덩어리진 벌떼를 벌통에 담아 내리셨다. 또 한 통의 벌통 가족이 생긴 것이다. 분봉해 나간 벌들을 제때에 벌통에 들이지 않으면 벌들을 날아가 야생벌로 살아간다. 어머니의 얼굴에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그렇게 어머니는 이십 여 통 가까운 벌을 치셨다. 어린 날 내게 꿀은 고통과 기다림 끝의 맛이었다.

[비평의 플랫폼] 어머니의 천재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나는 그 많던 벌들이 다 어디로 갔을까 허망한 생각에 빠지곤 했다. 아마 목숨을 다해 죽었거나 야생벌이 돼 새끼에 새끼를 치며 그 후손들이 산야에 살고 있을 거라 여긴다. 어머니가 주위 사람들을 미워하거나 욕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것은 어디서 배워온 것일까. 하느님과 진심으로 내통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경지였다. 믿음을 종교라는 틀에 묶지 않고 마음에 너나들이 배어둔 어머니였다. 가난했지만 베풀 것을 찾았다. 가난을 가난하게 하지 않았다. 가난에게서도 무언가 나올 것이 있음을 몸소 보여주셨다. 너무 억울하거나 뼈아픈 고통을 당하시면 가만히 우셨다. 그 가만한 울음 속에 하느님이 얼비칠 때도 있었다. 용렬한 아들은 그 슬픔의 깊이를 다 알지 못한다. 다만 그 슬픔이 남에 대한 증오로 옮아가지 않는 슬픔임을 안다. 당신의 영혼 속엔 남을 위한 꿀이 도래샘으로 흐를 거다.

비록 가난한 세 자매의 맏딸로 동생들을 위해 배움도 포기해 학력이 일천하셨지만 그 늡늡한 마음과 가난을 비탄으로 삼지 않는 용기만은 넉넉하셨다. 그래서 어머니는 손이 컸다. 손이 큰 사랑을 하시다 가셨다. 그것은 어머니가 가진 천재였다. 자신을 위해 쓰지 않았다. 그것은 하늘과 당신의 노력이 공모한 삶의 결이었다. 천재는 타고남만이 아니라 노력을 하는 즐거운 고통 속에 도드라졌다 하겠다. 나는 어머니 곁에다 채송화와 패랭이꽃 그리고 장미가 있는 화단과 채마밭 몇 평을 꾸려 드리고 싶다. 가끔 나는 그런 어머니의 눈길이 화단을 적시는 소낙비였다가 여우비였으면 좋겠다. 내내 당신 사랑의 천재를 조금씩 꾸어다 내 생활의 주변을 밝히고 싶다.

[비평의 플랫폼] 어머니의 천재

  • 0%
  • 0%


오늘의 주요뉴스




종료된칼럼

베스트클릭

실시간 급상승

10.0초

5분간 수집된 조회수 기준

오늘의 운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