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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차고 와. 착, 착 하면서. 오싹한 군화 소리…"

[MT서재] '몇 번을 지더라도 나는 녹슬지 않아'…식민지 전쟁 시대를 살아낸 할머니들의 슬픈 노래

MT서재 머니투데이 신혜선 문화부장 |입력 : 2016.02.27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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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차고 와. 착, 착 하면서. 오싹한 군화 소리…"
“이야, 종이 한 장 사이. 정말 머리가, 정신이, 깨질 듯했어. 때리고, 때리고. 매일 밤 계속하니까 참을 수가 없어.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 왜 매일 밤 매일 밤 우리 집에서 하냐고, 죽을 각오를 하고 소리를 지르면, 날 밖으로 내쫓아. 아이들도.”(188~189쪽 재구성).

세 살 무렵, 가난한 부모 손에 끌려 일본으로 온 박수련 할머니(1925년생)의 이야기다. 첫 번째 남편은 일본여인을 집으로 끌어들였다. 그녀는 남편 애인의 아이를 받는 산파 역을 하는 날조차 남편으로부터 발길질을 당했다. 영양실조와 남편의 그치지 않는 폭력 속에 수련 할머니는 한센병에 걸렸다. 그녀는 지금 국립 스루가요양소에서 생활한다.

“다들 칼을 차고와. 착, 착 하면서. 그 군화소리, 오싹해. 끈(행전)을 풀 여유도 없어. (옆 위안소에 있는 열아홉 살 여성이 크레졸 원액을 화장실에서 마시고 자살했다.) 그 여성은 죽을 정도의 의지가 있으니까 훌륭해. 나는 죽으려고 머리도 못 썼어. 뭘 해도 살아. 순조롭게 살면 맛있는 것도 나올 테고, 단것도 타올 테고.”(242쪽 재구성)

전쟁 때 속아 위안부로 끌려간 송신도 할머니(1992년생)는 일본에 생존한 유일한 재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다.

신도 할머니라고 그 치욕의 생활을 끝내고 싶지 않았을까. 기차에 뛰어내렸지만 죽지 않았다. ‘한겨울 맨땅에서, 담요 한 장으로 군인을 상대해야 했던’ 할머니는 겨울이 너무 싫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죽는 것보다 괴롭다”니. 할머니의 말은 살아있기 때문에 느껴야 했던 고통 그 자체다.

위안소에서 언니 동생뻘 되는 조선여성들의 죽음을 수없이 본 그녀는 5명의 아이를 뱄다. 사산, 유산, 낙태. 죽음의 고비 고비를 넘어 1946년 이후 미야기현 오나가와초에 살았던 할머니는 대지진을 겪었다. 쓰나미로 집이 쓸려가 모든 것을 잃었다.

흔히 ‘드라마 같다’는 말을 하지만 너무 지독해 드라마 소재로 차마 쓰일 수 없는 그런 삶들이 있다. 식민지 시대, 전쟁의 시대를 지나온 ‘일본에 살던 우리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그렇다.

저자 가와타 후미코씨는 오키나와에서 일본군위안부 생활을 한 배봉기 할머니에 관한 기록 ‘빨간 기와집-일본군위안부가 된 한국여성 이야기’(1987년)로 알려졌다.

‘알아야 할 역사에 내딛는 첫걸음’이라는 서문을 마주하면서 부끄러움이란 단어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는 “일본이야말로 알지 않으면 안되는 역사”라고 했지만 12명의 할머니, 그 이야기에 등장하는 29명의 우리 할머니의 삶을 듣고 기록하며 진짜 알아야 할 사람은 우리가 아닌가. 저자는 글자를 모르는 할머니들의 생생한 언어 앞에 “내가 모르는 세계관을 더 많이 보여준다”고 말한다.

책에는 위안부로 살아야 했던 송신도 할머니 이야기 외에 전쟁과 가난 속에 식민지 속국민이자 여자로 차별받은 설움이 ‘할머니들의 언어’로 서술됐다. 그들은 조선인이란 이유로 같은 노동을 하고도 일본인의 60~70% 정도 임금을 받아야 했고, 한글은커녕 조선옷을 입었다는 이유로 찢기고 매 맞았다. 일본땅에서 살아야 했던 운명으로 히로시마 원폭피해까지 입었지만 치료조차 받지 못했다.

‘제국의 땅’에서 살아남은 조선인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불편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가 정면으로 바라볼 때다.

◇ 몇번을 지더라도 나는 녹슬지 않아=가와타 후키코 지음. 안해룡·김해경 옮김. 바다출판사. 344쪽/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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