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투자고수는 왜 없을까? "여자 대통령도 있는데…"

/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

"올해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가 당선되면, 미국은 정치와 경제 수장 모두가 여성이 되는 거야. 그야말로 여성이 세상을 통치하는 여성 파워의 시대가 열리는 거지."

지난주 미국은 온통 '슈퍼 화요일'이라고 불리는 대통령 후보 경선 뉴스로 들썩였다. 미국 교민들 사이에서도 대선 후보자에 대한 얘기는 단골 소재였다. 현지에서 만난 60대의 한 교민은 "암탉이 울면 망한다는데..."라며 힐러리가 대통령이 되는 것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그가 공화당 지지자라서 그렇게 말하고 다닌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실제로 힐러리는 지난 1일(현지시간) '슈퍼 화요일' 경선에서 크게 승리하면서 민주당 대선 주자로 확정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이로써 미국 대선은 힐러리 대 트럼프(공화당)의 대결 구도로 펼쳐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같은 날 CNN이 발표한 대선 가상 대결에서 힐러리가 52%로 트럼프(44%)를 누르고 차기 대통령에 당선될 것이란 예상 결과가 나왔다.

(통상적으로 힐러리의 성을 따서 클린턴 대 트럼프라고 하는 게 맞지만, 힐러리는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의 차별을 위해 Hillary for America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성 대신 이름을 쓰고 있다).

예상대로라면 미국은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과 더불어 정치와 경제 수장을 모두 여성으로 채우는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된다. 여성 파워가 새삼스러운 건 아니지만 세계 최강국의 정치와 경제 수장이 모두 여성이 된다는 건 상징적으로 대단히 의미를 갖는다.


사실 여성 파워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우선 우리나라 대통령도 여자이다. 그리고 스포츠계에선 김연아, 박인비 등 여자 선수들의 활약이 더 크다. 그리고 중고등학교에선 여학생들이 내신성적 상위를 모두 휩쓸고 있다. 이 때문에 남학생들 사이에서 남녀공학을 기피하는 현상이 생겼다. 그래서 한국은 남자보다 여자들이 더 뛰어나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돈다.

고시 합격생도 여성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고 교사 임용고시에선 남자 선생님들이 희귀동물이 된 지가 오래됐다.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직에서도 여성들의 위상은 남성을 위협하고 있다.

하지만 유독 여자들의 존재가 여전히 미미한 곳이 있다. 바로 재무나 투자 등 금융분야이다. 국내외 통틀어 은행과 증권회사의 CEO 가운데 여성은 찾아 보기 힘들다(국내의 경우 유일하게 IBK기업은행장(권선주)이 여성이다). 그리고 벤자민 그레이엄, 피터 린치, 워런 버핏 등 수많은 전설적인 남성 주식 대가들은 많이 들어봤지만 그에 필적하는 여성 주식 대가는 알려진 게 거의 없다.

미국에선 '배당의 귀부인'으로 불렸던 인베스트먼트 퀄리티 트렌즈의 창간인 제랄딘 와이스가 여성이었는데, 세상은 무려 11년 동안이나 필명 뒤에 숨어있는 그녀가 여자인지 몰랐다. 그녀는 1940~50년대에 대학에서 경영학과 재무학을 전공했지만 졸업 후 증권회사에 취직하려고 했을 때 그녀에게 허용됐던 최선의 일자리는 비서자리 뿐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재무와 투자세계에서 여성에 대한 성차별이 심하다.

이런 외적인 차별 외에 재무나 투자 분야에서 여성들의 존재감이 미미한 이유로 여성들의 소극적인 성격을 들기도 한다. 특히 여성들의 자신감 부족(lack of confidence)이 많이 거론된다. 여자들은 소위 배짱이 부족해서 재무나 투자 결정을 주저하거나 아예 행위자체를 안 한다고 비난을 받는다.

반면 남자들은 이상하게도 재무나 투자 문제에 관해선 없던 자신감도 생겨나는지 안 해도 될 일을 하거나 실수를 저지른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 UC-Davis의 브래드 바버 교수와 UC-Berkeley의 테랜스 오딘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남자는 여자보다 더 빈번이 주식거래를 하고 주가예측이 가능하다고 믿는다고 한다. 이들은 이를 남자들의 지나친 자신감(overconfidence) 탓으로 돌렸다.

또 다른 연구에서도 남자와 여자의 재무적인 지식은 비슷했지만 여자 스스로 재무적 지식이 있다고 느끼는 비중이 남자에 비해 절반 정도에 지나지 않은 걸로 나왔는데 이는 재무와 투자 문제에 대한 여자들의 자신감 결여를 보여준다. 지난해 발표된 글로벌 재무 이해력(Financial Literacy) 평가 보고서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는데, 남자와 여자 사이에 재무 이해력 정도는 비슷하지만 남자들은 비록 틀린 답을 골라도 자신의 답에 자신감을 가진 반면 여자들은 그렇지 못했다.

이런 자신감 결여 현상은 부부 사이의 투자결정에서도 흔히 나타난다. 부인의 재무적 지식 정도에 상관없이 부부 사이에서 재무나 투자 등의 최종 결정은 보통 남편이 내린다. 대다수의 가정에서 부인은 남편에게 재무나 투자결정을 맡기는 걸 당연시 여긴다.

심지어 여자들이 재무나 투자에 아예 관심이 없다는 재밌는 사례도 있다. 5년 전 워싱턴 DC를 기반으로 여성들을 위한 은퇴설계 세미나를 진행했던 한 금융기관은 지역 간호사를 대상으로 '투자(investing)' 세미나를 열었더니 행사장에 나타난 간호사는 고작 1~2명에 불과했다. 그 후 세미나 이름을 재무안정(financial security)으로 바꾸었더니 세미나장이 간호사들로 북적거렸다고 한다. 이는 여자들이 자신을 투자자로 여기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그러나 뱅크오브아메리카에 합병되기 직전 세계 3대 투자은행이었던 메릴린치증권의 CEO였던 샐리 크러체크는 "여자들이 더 현명한 투자를 한다"며 여자들에 대한 편견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프라예 파이낸셜센터의 창업자인 프라예도 "여자들은 남자들에 비해 안전 지향적이지만 더 우수한 투자자들"이라고 강조한다.

바버와 오딘 교수의 연구에서도 여자들의 주식 투자수익률이 남자들보다 높았다. 남성들 사이에서도 기혼자가 미혼 남성보다 수익률이 월등히 높았다. 부인(여자)의 영향이 분명 플러스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최근 세계 최대 인덱스펀드 운영사인 뱅가드의 한 조사결과에서도 여자자 남자에 비해 위험을 더 기피하지만 주식투자 종목구성에 있어서 남자와 큰 차이가 없는 걸로 나타났다. 즉 투자 의사결정에 있어 남녀 차이가 없다는 얘기다.

다만 주식투자에 있어 여자들이 남자들과 차이가 나는 부분은 남자들은 자기 스스로 결정하고 투자하는 성향이 강한 반면 여자들은 전문가에서 맡기는 성향이 높다는 점이었다. 이는 남자들이 길을 찾을 때 남에게 묻지 않고 스스로 찾으려고 하는 반면 여자들은 주위에 물어보는 경향이 큰 것과 비슷하다.

결국 여자들이 재무나 투자에 자신감이 부족하거나 관심이 없게 된 이유는 자라온 가정환경과 어렸을 때 받은 교육의 영향이 크다. 보통 부모들은 딸에게는 집안의 재정적인 형편이나 돈 얘기를 잘 꺼내지 않는다. 학교 교육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여성 투자 대가가 없다는 것은 여성들이 투자에 있어 열등해서가 아니라 잘못된 편견과 교육, 환경의 결과이며 또한 여성에 대한 차별도 한몫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시들을 뽑아 버린다면 여성 투자 대가가 나오지 말라는 법은 결코 없다. 여성 대통령도 나오는 세상에 못할 게 무엇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