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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였던 '알파고', 2국에선 이세돌이 됐다

[이승형의 세상만사]

이승형의 세상만사 머니투데이 이승형 부장 |입력 : 2016.03.10 15:01|조회 : 23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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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바둑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상대방이 돌을 놓아달라는 곳에 다 놓아주고도 이기는 바둑’이다. '알파고'가 그랬다. 이세돌에게 두 판을 내리 이겼다. 인간 그 이상의 인간처럼.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우울한 청소기'나 '유쾌한 냉장고'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알파고는 좀 다르다.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제는 '꽃'이라고 불러야 할 판이다.

이세돌과의 첫 대국에 등장한 알파고에게서 이창호가 보였다면 호들갑일까. 고작 바둑 한 판을 보고 바둑계의 '살아있는 전설' 이창호를 들먹이는 건 과잉일 수도 있겠다. 이창호가 누구인가. 최근 인기를 끈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주인공 최택의 실존인물로 10대들에게도 유명해진 그는 최연소 국내외 기전 우승, 세계대회 최다 타이틀, 최다연승(41연승)이란 불멸의 기록을 갖고 있다. 중국에서는 지금도 그를 '바둑의 신(神)'이라고 부른다. 이세돌이 출현하기 전 그는 세계 바둑의 지배자였다.

 이세돌 9단이 지난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구글 인공지능(AI) 알파고의 첫 대결에서 눈을 감고 있다. 이세돌은 이날 알파고와의 1국에서 불계패했다./사진제공=구글
이세돌 9단이 지난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구글 인공지능(AI) 알파고의 첫 대결에서 눈을 감고 있다. 이세돌은 이날 알파고와의 1국에서 불계패했다./사진제공=구글
그런데 알파고가 보여준 바둑에 많은 프로기사들이 이창호를 떠올렸다. '그' 혹은 '그녀'의 바둑은 이창호의 기풍(棋風)과 흡사했다. 두텁고, 상대방의 공격을 무덤덤하게 받아주는 바둑. 그리고 적절한 타이밍에 승부를 거는 스타일.

바둑에서는 흔히 '두텁게(엷게) 둔다' '발이 빠르다(느리다)'라는 말을 한다. 바둑이 두터우면 상대방이 쉽게 공격하기 어렵지만 발이 느린 단점이 있다. 발이 느리다는 건 땅을 차지하는 속도가 늦다는 의미다. 말하자면 상대방이 자기 땅이라며 여기저기 깃발을 꽂고 있는 사이 한 곳에 깃발도 꽂고 벽도 세우느라 이리저리 땅을 선점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물론 깃발을 꽂은 땅이 모두 자기 집이 되는 건 아니다. 바둑돌을 놓는다고 모두 다 집이 되는 것은 아닌 이치다.

이창호는 전성기 시절 '답답할 정도'로 바둑을 두텁게 뒀다. 인내의 바둑이었다. 상대방이 그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도발할 때까지 기다려서 제압하거나, 계가까지 가게 되면 반집 또는 1집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이겼다. 그의 승리 방정식이었다. 선공으로 압도하고 상대방의 '대마(大馬)'를 잡아 이기는 바둑이 아니었다.

조훈현은 '제비'라는 별명처럼 발빠른 바둑을 뒀다. 유창혁도 '세계 최고의 공격수'라는 칭호를 얻었을 만큼 상대방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바둑이었다. 하지만 이들 모두 이창호에게 졌다. 조금 느리지만 두터운 그의 바둑에.

알파고는 1국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줬다. 이세돌이 특유의 '흔들기'로 싸움을 걸어올 때 침착하게 다 받아줬다. 잽을 날리는데 가드를 단단히 올려 툭툭 막아내는 형국이랄까. 그리곤 100수가 넘어가자 우변 적진에 결정적인 승부수를 뒀다. 어퍼컷을 날린 것이다. 그걸로 끝이었다. 두터운 바둑은 끝내기가 강하기에 이세돌은 더 해볼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2국에서는 이창호가 사라지고 이세돌이 등장했다. 알파고가 이세돌이 된 것이다. 이세돌이 전날의 패배를 의식해 두터운 바둑으로 나오자 이번엔 이세돌처럼 끊임없이 변화를 꾀하는 바둑을 들고 나왔다. 이건 또 무엇인가. 박정상 9단의 말대로 '사람을 갖고 노는 것'인가. 2국을 해설하던 김성룡 9단은 "알파고가 어디까지 갈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인공지능(AI) 세계에는 '튜링 테스트(Turing Test)'라는 것이 있다. 1950년대 수학자이자 암호해독가인 앨런 튜링이 제시한 인공지능 판별법이다. 인간 실험자가 인공지능과 '대화'를 할 때 마치 인간과 이야기하는 것처럼 어색함을 못 느낀다면 그 인공지능은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게 된다.

'수담(手談)'이라 함은 말없이 대화한다는 뜻으로, 바둑을 둔다는 의미다. 알파고와 수담을 나눈 이세돌은 "인간이 두는 것 같지 않았다"고 했다. 그것은 경멸이 아닌 경외의 표현이었다. 이미 튜링 테스트 따위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일단 걱정되는 것은 바둑계다. 앞으로 몇 년 안에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이 "인간들끼리 승부해서 이긴 자와 대결하겠다"고 선언하는 일이 벌어질 것 같아 하는 말이다. 도전자가 바뀐 꼴이다. 좀 무섭다. 아니 많이.

손발을 대신하던 기계가 이제 머리가 된다. 그것도 대단히 천재적인 머리. 우리 머리 위에 있는 머리. 메트릭스의 세계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파란 약'과 '빨간 약'중 무엇을 선택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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