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 AI 개발자, 이세돌 대결 후 회사 떠날까

/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

“지금 인공지능(AI)을 전공한 박사들이 졸업 후 어디로 가는지 아세요? 거의 절반 정도가 헤지펀드회사로 갑니다.”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인 구글의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상대로 3연승을 거두면서 데미스 하사비스(Demis Hassabis) 박사 등 인공지능 개발자들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진다. 그들에겐 앞으로 남은 2게임의 승패 여부는 중요치 않을 듯하다.


그리고 일부의 예상대로 알파고가 세계랭킹 1위인 중국의 커제와 맞붙는 것도 별로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래봐야 단지 더 발전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으로 인정받는 게 전부일 뿐이다. 정말로 구글 디마인드(DeepMind)의 인공지능 개발자들이 단순히 최고의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개발로 만족할까? 분명 이들의 다음 행보는 알파고의 인공지능 기술을 바둑이 아닌 새로운 분야에 적용해보는 것임에 틀림없다.

IBM의 인공지능 컴퓨터인 왓슨(Watson)도 마찬가지였다. 왓슨이 2011년 인기 TV 퀴즈쇼인 ‘Jeopardy!’에서 역대 최고 퀴즈왕들을 이긴 뒤 그 다음 행보는 인공지능 기술을 의료분야에 적용해 보는 거였다. 왓슨은 결코 최고의 인공지능 퀴즈 맞추기 컴퓨터로 남아 있지 않았다.

왓슨의 핵심 인공지능 기술은 컴퓨터가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답을 하는 능력인데 이 기술은 곧바로 새로운 분야에 적용됐다. 그해 10월 애플은 아이폰4S에 왓슨과 같은 음성인식 서비스 시리(Siri)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왓슨의 Jeopardy! 승리 이후 불과 9월 만의 일이었다.


인공지능 개발자들도 매한가지다. 구글 알파고의 인공지능엔 데미스 하사비스 박사가 있다면 IBM 왓슨의 인공지능엔 데이빗 퍼루치(David Ferrucci) 박사가 있었는데 그는 1995년부터 IBM 왓슨리서치센터에서 인공지능을 연구했다. 지금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기면서 하사비스 박사가 일약 스타로 떠오른 것처럼 2011년 왓슨이 역대 최고 퀴즈왕들을 물리친 뒤 퍼루치 박사는 전세계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인공지능 분야의 최고의 권위자로 인정 받았다.

퍼루치 박사는 왓슨의 Jeopardy! 승리 후 인공지능 기술을 의료분야에 적용하는 새로운 프로젝트 개발을 책임졌고 사람들은 모두 그가 인공지능 기술로 의료분야에서 또 한번의 놀라운 뉴스를 만들어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2012년 겨울 퍼루치 박사는 홀연히 17년간 근무했던 IBM을 떠났다. 그리고 대형 헤지펀드 회사인 브릿지워터 어소시어츠(Bridgewater Associates)에 조용히 새둥지를 틀었다. 이 사실은 두고두고 인공지능 분야에서 화제가 될 만큼 충격적이었다. 2013년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퍼루치 박사는 인공지능 기술을 주식시장과 경제모델로 확장·적용해 보고 싶어 IBM을 떠났노라고 밝혔다. 쉽게 말하면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주식시장에서 대박을 낼 수 있는지 보고 싶다는 얘기다.

그런데 인공지능 전공자들이 헤지펀드 회사로 옮겨가는 건 페루치 박사만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인공지능 분야의 대표적인 연례 학술 모임인 학술신경정보처리시스템(Neural Information Processing Systems, NIPS) 컨퍼런스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작년으로 29회째인 이 학술 컨퍼런스엔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테크 공룡기업들이 대거 참여해 채용 부스를 만들고 인공지능 박사 유치경쟁에 나섰는데 놀라운 건 NIPS 컨퍼런스에 참여한 인공지능 박사 졸업생들의 절반 정도가 테크기업들이 아닌 헤지펀드 회사에 취직했다는 점이다.

최근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면서 인공지능 전공자들에 대한 유치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는데 현재 인공지능 박사들이 전세계적으로 희귀해 이들의 몸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게 뛰고 있다. 특히 소위 전문가(expert)라고 불리는 유능한 개발자들은 '부르는 게 값'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귀한 존재가 됐으며 이들을 모셔가기 위해선 최소 수백만 달러의 연봉을 제시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세상에서 제일 빨리 돈 냄새를 맡는다는 헤지펀드 회사들이 테크기업들을 제치고 인공지능 박사들을 대거 모셔가고 있다. 사실 인공지능 기술을 주식투자에 적용하려는 헤지펀드는 이미 세계 곳곳에서 설립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신생 헤지펀드 회사인 센티엔트 테크놀러지(Sentient Technologies)는 애플의 음성인식 서비스 시리의 기술을 개발한 바백 호잿(Babak Hodjat) 박사를 최고과학자(Chief Scientist)로 영입했다.

인공지능의 또 다른 대가인 벤 고어젤(Ben Goertzel) 박사는 지난 2014년 홍콩에서 에이디이아(Aidyia)라는 헤지펀드 회사를 설립했다. 이 밖에 영국의 투자회사인 Man AHL, 뉴욕에 위치한 리벨리언 리서치(Rebellion Research), 코네티컷에 위치한 포인트72 애셋매니지먼트(Point72 Asset Management) 등도 모두 인공지능 기술을 주식투자에 적용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이세돌 9단을 꺽은 알파고의 하사비스 박사 등 인공지능 개발자들도 다음 목표를 주식시장에 두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점쳐 본다. 만일 그렇다면 인공지능 주식거래 시스템의 이름이 '알파스톡(Alpha Stock)' 정도 될 수도 있겠다. 머지않아 이들이 인공지능 기술로 주식시장에서 새롭게 도전하기를 잔뜩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