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의 엔터만상]'미제 사건'에 빠진 한국 드라마

장기 미제사건을 다뤄 시청자들로부터 큰 관심을 얻은 드라마 '시그널'이 마침내 종용했다. 지난 1월 첫 회를 시작으로 16회까지 진행되는 동안 이 드라마는 다양한 장기 미제사건을 다루며 때로는 시청자들에게 시원함을 선사하기도 하고, 때로는 안타까움을 주기도 했다. 드라마는 범죄의 몸통(극중 장영철 의원)을 남겨 둔 채 시즌 2의 가능성을 열어두며 마무리됐다.


시그널이 장기 미제사건이라는 주제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듯이 최근 오랜 기간 해결되지 못한 사건들을 모티브로 한 드라마들이 적지 않다. 앞서 종영한 '리멤버-아들의 전쟁'을 비롯해 이달부터 새롭게 방영 중인 '미세스캅 2' 역시 장기 미제사건을 다루면서, 시청자들의 흥미를 유발시키고 있고, 비단 드라마뿐 아니라 영화에서도 주요 소재로 다뤄지고 있다. 최근 1000만 관객을 동원한 '베테랑'이 대표적이라 할 만하다.

미제사건은 범인을 잡지 못한 채 종결된 사건을 의미하지만, 범인이 잡혔지만 진범은 따로 있는 사건도 미제사건이라 할만하다. 그런 의미에서 드라마 주제로 미제사건은 까도까도 끝이 없는 양파와도 같다.

이처럼 최근 미제사건을 주제로 한 드라마들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갈수록 계층화되는 한국사회와 무관치 않다. 드라마에서 다뤄지는 미제사건의 배후에는 항상 거악들이 자리한다. 대부분 정치인, 재벌 등 사회적 강자들이다. 이들에게 당하는 상대는 힘없고 돈없고 빽없는 약자들이다. 드라마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고, 실제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만 시청자들이 속시원해 하는 '사이다' 전개가 현실에서 이뤄지기란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낀다. 비록 시간이 걸리더라도 힘있는 자도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게 돼 있다는, 범행을 감추고 싶어도 결국에는 밝혀지게 돼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에 시청자들이 드라마에 빠져드는 이유다.


지난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서영교 의원이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법원별 장기미제 사건 현황' 자료를 살펴보면 2011년 2835건이었던 2년을 초과한 장기미제 사건이 2015년 6월 현재 5253건으로 대폭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 해결해야 할 사건들은 많고 위로받아야 할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허구에 지나지 않는 드라마지만 이를 통해 우리가 잊고 지냈던 사회의 부조리한 모습을 한 번쯤 다시 상기해 볼 수 있다면 드라마는 사실보다 더한 진실을 알려주는 도구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