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重 새 선박 앞에 '도끼'들고 나타난 여성들, 왜?

지난 10일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84㎥급 초대형 가스운반선 명명식 대모로 나선 오로라LPG CEO의 부인 카타리나 레오팍스 요한슨(왼쪽), 어머니 베린 파네스 요한슨 여사. 배와 안벽을 연결한 밧줄을 도끼로 내려친 후 가진 명명 기념식에서 테이프커팅을 하고 있다./사진=현대중공업

'수주 절벽'이 지속되는 가운데 건조를 마친 선박들이 속속 조선소 품을 떠나면서 도크가 비어가고 있다. 2~3년전 시장 상황이 나았을때 수주한 선박들이 건조를 마치고 치르는 ‘명명식’은 이전보다 눈에 띄게 차분하고 소박해졌다.

지난 10일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14안벽(진수한 배를 세워두고 마무리작업을 하는 공간). 건조를 마친 2척의 84㎥급 초대형 가스운반선(VLGC) 앞에 도끼를 든 두 여인이 나타났다. 김정환 현대중공업 조선사업본부 대표를 비롯한 현대중공업 임직원과 노르웨이 선주사 오로라LPG 관계자 100여명의 시선이 이들 여인들에게 집중됐다. 이들은 보르게 파네스 요한슨 오로라LPG CEO의 부인 카타리나 레오팍스 요한슨, 어머니 베린 파네스 요한슨 여사다.


요한슨가(家) 여인들은 도끼로 VLGC 2척과 안벽을 연결한 밧줄을 각각 내리쳤다. 새로 태어나는 선박의 '탯줄'을 자르는 의미다. 밧줄이 끊기며 축하의 의미로 꽃바구니가 터지고 뱃머리 왼쪽에 새겨진 배 이름 'AURORA BALDER(오로라 발드르)', 'AURORA BRAGE(오로라 브라게)'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로라 발드르와 오로라 브라게는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이름이다.

완성된 배에 이름을 붙여주는 행사를 명명식(命名式)이라 한다. 배에 이름을 붙여주는 사람은 대모(代母·Godmother) 혹은 스폰서(Sponsor)라고 한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금기시된 아랍권(중동)을 제외하면 여성이 배에 이름을 붙인다.

선박 이름을 왜 여성만 지을 수 있을까. 여자 스폰서의 기원은 중세 바이킹 의식과 천주교 세례의식에서 비롯한다. 중세 바이킹족은 새로 만든 배를 바다에 띄우기 전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배의 안전을 기원하면서 처녀를 제물로 바치는 의식을 가졌다. 여기에 천주교의 세례의식이 접목됐다. 배(ship)는 여성으로 간주되는데, 세례에서 여성의 대모는 여성이 맡게 돼 있어 선박의 대모도 여성이 하게됐다는 것이다. 뱃머리에 샴페인 병을 깨뜨리는 것도 물로 세례하는 데서 시작됐다.


기록상 여자 스폰서의 시초는 19세기 영국의 왕 조지 3세다. '딸바보' 조지 3세는 딸인 공주가 1811년 건조한 해군 함정의 이름을 명명하도록 했다. 배에 탑승할 장교 중 한 명이 명명했던 관행을 깬 것이다. 이후 명명식에서 배 이름을 지어주는 스폰서를 여성이 맡게 됐다.

스폰서로는 보통 선주의 부인이나 딸, 선주사 고위 관계자, 정부 고위 관계자 부인 등이 나서지만, 드물게는 조선업체 여성 직원이나 노조위원장 부인이 하기도 한다.

지난 4일 대우조선해양의 세계 최초 FLNG(Floating LNG, 액화천연가스 부유식 생산·저장·하역 설비) 명명식에는 페트로나스의 완 아리핀 회장 부인인 아주라 아흐마드 타주딘 여사가 대모로 나섰다. 이 배는 'PFLNG SATU'로 명명됐는데, 말레이시아 국영 가스공사 페트로나스의 첫번째 FLNG라는 뜻이다.

현대중공업이 지난 1974년 6월 처음 진수한 26만㎥급 원유운반선의 스폰서는 고 박정희 대통령 영부인인 고 육영수 여사가 맡았다. 지난 2014년 2월 현대상선이 발주한 1만3100 TEU급 컨테이너선 '현대드림호' 명명식에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대모로 나섰다.

최연소 대모는 지난 2006년 현대중공업이 진수한 독일의 9100TEU급 컨테이너선 명명식에 대모로 나선 3살 바기 스폰서다. 당시 만 2년4개월이었던 스위스 선박 운용사 간부의 딸 이네스 아고스티넬리양이 자신의 이름을 따 '이네스호'로 명명해 화제가 됐다.

조선소 직원이 대모 역할을 하기도 한다. 지난해 6월 대우조선해양의 AP 몰러-머스크 1만8270TEU 시리즈 명명식에는 동급 컨테이너선 20척중 마지막 호선 명명식이라는 점을 고려해 머스크 측 배려로 박지혜 대우조선해양 선박시운전부 대리가 대모로 나섰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명명식은 100% 선주 부담이어서 최근 조선경기 불황을 고려해 과거만큼 명명식을 화려하게 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4일 옥포조선소에서 세계 최초로 건조한 FLNG 명명식을 가졌다. 이 배는 말레이시아 선주 페트로나스의 첫번째 FLNG라는 뜻으로 'PFLNG SATU'로 명명됐다./사진=대우조선해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