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S 간첩사건' 60대男, 대법서 간첩 혐의 벗어

서울 서초동 대법원./ 사진=뉴스1

북한 공작원의 지령을 받아 위치정보시스템(GPS) 등 군사비밀을 북한에 넘기려 한 혐의로 기소된 무역업자가 대법원에서 간첩 혐의를 벗었다. 대법원은 이 사업가가 북한 공작원과 접촉했다고 볼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2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뉴질랜드 국적 김모씨(60)와 무역업자 이모씨(68)에 대해 각각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과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8일 밝혔다.


김씨 등은 2011년 7월 중국 단동시 소재 아파트에서 북한 고위층 자제로 소개받은 북측 공작원으로부터 군사용 레이더를 구해오라는 지시를 받고 국내 군사장비 중개업자 정모씨를 통해 이를 구매하려 한 혐의로 기소됐다.

김씨 등은 같은달 고공관측 레이더·전파교란장비·전파감지기 등 군용장비를 구해달라는 공작원의 요청에 따라 정씨에게 장비 구매를 부탁한 혐의도 받았다.

김씨는 국내에서 군장비를 공급하는 일을 하던 중 2001년 뉴질랜드로 이민을 떠났다. 2005년에는 뉴질랜드 친북단체인 '재뉴질랜드동포연합회'(재뉴련)를 결성, 방북단을 꾸려 2009년까지 수차례 북한을 방문했다. 재뉴련은 북한 통일전선부의 지도를 받았고 김씨는 "내가 재뉴질랜드 북한대사다"라는 발언도 했다.


이씨는 1972년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징역 20년으로 감형받았다. 이후 사상전향서를 쓰고 1990년 가석방됐다. 1994년부터는 북한 농수산물 등을 국내로 수입하는 등 대북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2010년 5월 천안한 폭침사건으로 대북교류가 전면 중단되면서 사업상 어려움을 겪었다.

이씨는 2010년 12월 서울에서 김씨를 만나 2011년 3월 함께 북한 송이버섯 수입 사업을 하기로 했다. 김씨는 이때부터 같은해 8월까지 수차례 중국과 북한을 오갔고 이 과정에서 이씨와 함께 공작원으로 의심되는 남성을 만났다. 이후 김씨는 수익 분배 문제로 이씨와 사이가 틀어졌고 "이씨가 북한 공작원을 만나 지령을 받았다"며 수사기관에 신고했다.

재판에서 이씨는 이 남성은 평양에서 유학 중인 중국인이라며 혐의를 전부 부인했다. 반면 김씨는 혐의를 대체로 인정하면서도 돈을 벌려고 했을 뿐 북한을 도울 생각은 없었다고 항변했다.

1심은 김씨와 이씨의 간첩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김씨가 2010년과 2011년 공항에서 위조 여권을 사용한 혐의만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주장한 사실관계는 대부분 김씨의 진술을 토대로 하고 있다"며 "김씨가 북한의 지령을 받았다는 점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김씨는 이씨로부터 '북한 고위층 인사 7~8명이 무기를 사기 위해 기차를 타고 중국으로 나왔다'는 북한 공작원의 말을 전해들었다고 한다"며 "그러나 어떤 무기를 어떻게 구입할지에 관하여 아무런 계획 없이 해외로 나왔다는 것은 이례적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검찰은 북한 공작원으로 의심되는 남성의 실명까지 특정해 항소했지만 2심에서도 판결은 바뀌지 않았다.

재판부는 "검찰은 '김씨에게 북한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 전직 부대표 사진을 보여주자 자기가 만난 남성과 같은 사람이라고 진술했다'고 주장한다"며 "그러나 대북사업 관련자들 진술을 종합한 결과 검찰이 지목한 남성은 북한 공작원이 아니라고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씨 진술은 증거가치가 없다"고 결론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