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점심에 '대게' 쏜다"…맛집·꿀잠 찾는 회사원들

엔씨소프트의 특식 점심 메뉴 중 하나인 대게찜, 대게찜이 나오는 '대게데이'엔 직원들이 점심일정을 안잡기도 한다. /사진제공=엔씨소프트

낮 12시부터 1시. 식당 앞 줄서기, 주문하고 기다리기, 입에 몰아넣기, 씹으며 계산하기, 식당 문 나와 사무실에 돌아오기. 많은 직장인들이 전쟁 같은 점심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점심시간은 직장생활에서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직원들에게 '깜짝 특식'을 선사하는 회사, 작지만 알찬 '맛집'을 찾아다니는 직장인, 끼니는 간단히 해결하고 자기계발이나 휴식에 활용하는 등 새로운 점심문화를 만드는 노력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계절따라 맛따라…특식 쏘는 회사= 엔씨소프트에서는 두 달에 한 번꼴로 특별한 점심을 먹을 수 있다. '특식데이'라고 불리는 이날엔 육식·중식·TV맛집 등의 별식이 나온다. 평소 구내식당의 1끼 단가가 5000원가량인데, 이날은 최소한 1만원대 이상의 질 좋은 식사가 제공된다. 지난달 '양식데이'에는 독일식 족발요리 '슈바인학센'과 수제 소시지, 버팔로윙, 그리고 인근 유명 디저트 가게의 푸딩이 후식으로 나왔다.

특히 인기가 높은 '대게데이'엔 직원 1인당 1마리씩 계산해 대게 2500마리를 공수해 찌기도 한다. 직원들도 이날은 웬만하면 따로 점심약속을 잡지 않고, 자칫 실수로 잡은 일정도 취소할 정도라고. 엔씨소프트 관계자는 "급식 메뉴가 반복되는 경향을 바꿔 직원들에게 좋은 먹거리를 제공하고자 특식데이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한 끼라도 맛집으로=유진투자증권에 근무하는 이상우 연구원은 여의도에서 알 만한 사람은 아는 식도락가다. 이 연구원이 운영하는 블로그에는 2008년부터 하나씩 올리기 시작한 맛집 포스팅이 2200여개다. 이 연구원은 "맛없는 음식을 먹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며 "이왕이면 더 재미있게, 더 맛있게 점심식사를 하고 싶어 맛집을 찾아다닌다"고 말했다.

그가 최근 '꽂힌' 주제는 기사식당. 서울 양평동이나 당산동 등 일대로 나와 기사식당 맛집을 찾는다고 한다. 이 연구원은 "이미 많이 알려진 맛집과 달리 싸고 맛있는 집을 좋아한다"며 "사람을 만나는 일이 많다 보니 다른 직업보단 점심에 맛집을 찾아다닐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밥 아니어도 돼…지식·휴식 채우기도= 일부 직장인에게 점심은 자기계발이나 재충전의 시간이기도 하다. 취업정보업체 잡코리아가 지난해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점심시간에 식사 외 다른 활동을 하지 못한다는 직장인 974명 중 884명(90.8%)이 "다른 활동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고 싶은 활동으론 산책(48.9%), 다과 등 친목도모(37.2%), 잠자기(30.5%) 등이 꼽혔다.

종로구의 한 어학원에선 점심시간 직장인 강좌를 운영한다. 영어 7개, 중국어 1개, 일본어 1개 등 강좌 9개가 열린다. 직장인은 총 50여명, 지난해까지 20% 정도였던 직장인 비중은 50%로 늘었다.

종종 회사의 지원이나 양해를 받기도 하고, 4~5명씩 수업을 듣는 이들도 있다. 점심시간 대부분을 수업시간으로 쓰는 만큼, 수업 시작과 끝 수강생들이 강의실과 사무실을 향해 뛰어가는 모습은 익숙한 풍경이다.

3개월째 중국어반 수업을 들었다는 이모씨(34)는 "올해부터 여유가 생겨 사내커플인 부인과 함께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며 "떡이나 김밥 등으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한다"고 말했다. 영어반 수강생 박모씨(29)는 "인사고과보단 자기계발을 위해 수업을 시작했다"며 "다른 약속이 많은 저녁보다 시간 내기 편해 점심시간 수강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잠을 청하는 직장인도 있다. CGV 여의도점은 지난달부터 상영관 하나를 낮잠 수면실로 제공하는 '시에스타'서비스를 시작했다. 숙면을 위해 음료와 안대, 귀마개를 주고, 담요를 빌려준다. 수면시간이 시작되면 조명을 끄고 새소리를 들려준다. 안락의자에서의 1시간이 지나면 직원이 돌아다니면서 고객들을 깨워준다.

CGV 관계자는 "여의도 일대 벤치에서 조는 직장인을 보고 만든 프로그램"이라며 "서비스 한달째 입소문이 퍼져 잠시 휴식을 취하려는 직장인들의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