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 전 한은 총재 “소득재분배에 정부가 나서야”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사진=머니투데이DB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중앙대 명예교수)가 가계소득을 늘리는 소득재분배 정책을 통해 성잠재력을 확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정부 경제정책 중심축은 대기업 주도 경제성장을 통해 가계소득을 늘리는 이른바 ‘낙수효과론’에 기반 했는데 앞으로는 가계소비가 기업소득을 늘려 성장을 이끌어가는 ‘분수효과(Fountain effect)’에 따른 성장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 전 총재는 28일 중앙대에서 한국경제학회 주최로 열린 경제학 원로 석학과의 대화에서 ‘한국경제의 위기와 구조개혁’을 주제로 강연하면서 이같은 견해를 밝혔다.

그는 “오늘날 한국의 경기침체는 두말 할 것도 없이 구조적인 것”이라며 “우리 정부가 그동안 여러 차례 금리인하와 재정확대를 통한 경기부양책을 썼지만 별 효과가 없었던 것은 우리의 침체가 경기변동에 의한 순환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잠재성장률이 추세적으로 하락하고 있어 구조개혁으로 대응해야 하며 단기부양책은 구조개혁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이거나 일시 진통효과를 위한 경우 제한적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전 총재는 구조개혁의 중심축을 성장에서 분배로 옮길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주장의 이유로 △성장보다 복지가 뒤떨어져 있는 점 △경제성장에서 민간소비 중요성 증대 △경기침체의 본질은 저성장보다 양극화에 따른 가계소득 감소와 가계부채, 전월세 상승 등에 따른 민생위기 등을 거론했다.

그는 정부가 소득재분배 정책을 통해 기업과 가계간의 소득순환을 정상화시켜 양극화를 해소하고 빈부격차를 완화하고 빈곤층의 중산층화를 촉진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소득재분배를 위한 재원은 재정건전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증세, 사회보험료 현실화, 공기업 흑자경영과 부채축소, 군인과 교직원 연금개혁 등을 통해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전 총재는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증세이며 소득재분배 취지에 따라 대기업과 고소득층이 더 부담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

법인세율을 높이면 기업투자가 줄어들 것이란 지적에 대해선 “투자수요가 많은데 기업이 자금이 없을 때는 그렇다고 볼 수 있지만 지금은 자금은 여유가 있는데 투자할 데가 없다”며 “해외에 투자하고 200조원 내외의 현금성 사내유보금을 쌓아놓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법인세 부담이 국내투자를 감축시키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반박했다.

박 전 총재는 이와 함께 △노동시장 개혁 △규제개혁 △저출산과 고령화 대책 △교육개혁 △부동산과 주거비 개혁 △정부개혁 △가계부채 해소 등을 한국경제 지속적 성장을 위한 과제로 손꼽았다.

그는 “두 가지의 구조개혁을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며 “예컨대 대기업은 노동개혁과 규제개혁이 이뤄진다면 법인세를 흔쾌히 더 낼 수 있을 것이고 노동자들은 소득배분배 정책을 통해 노동복지가 상향되면 노동개혁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성장과 분배 양면에 걸친 구조개혁은 국민들의 엄청난 이해관계 충돌을 수반하게 될 것이므로 사회발전을 위해 개인이익을 자제할 수 있는 대승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이 모든 것을 성취시키는 능력이 정치적 리더십”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박 전 총재는 2002년 4월부터 2006년 3월까지 제22대 한국은행 총재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