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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대생의 진로고민에 '진로'가 없는 이유

[여자사람취준생일기]

머니투데이 이재은 여자라이프스쿨 대표 |입력 : 2016.04.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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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대생의 진로고민에 '진로'가 없는 이유
“저의 가장 큰 진로고민이요? 음... 그건 그렇게 하고 싶은 게 없다는 거예요. 부모님이 하라는대로 공무원 준비를 하고 있지만 사실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은 아니거든요. 하지만 그렇다고 부모님 바람에 반대되는 행위를 할 자신은 없어요.”

“교수님은 바로 취업하지 말고 대학원 진학을 하래요. 우리 과는 석사를 해야 더 취업이 잘 되는 과니까 괜히 이상한 데 취업해서 시간 낭비하지 말라고요. 대학 졸업하고 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고 싶었는데... 교수님 조언을 들으니 너무 혼란스러워요.”

“진로도 진로지만, 우선 선후배 간의 관계가 어려워서 다른 학교로 가야하나 과를 바꿔야 하나 편입을 해야하나가 고민이에요. 억지로 어울리며 동화되고 싶지 않은데 그런 걸 요구하니까 제 인생 자체가 끌려다니는 느낌이에요.”

“더 나은 일자리와 성장을 위해 해외 취업에 도전하고 싶지만 그러면 오래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져야 할 것 같아요. 남자친구도 반대하는 상황이구요. 이런 상황 앞에서 결정에 머뭇거리는 제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져서 우울한 요즘이에요.”

여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노라면 이들의 ‘진로고민’엔 ‘진로’가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흔히들 진로고민이라고 하면 직업과 관련해 어떤 진로를 선택하고 어떤 준비를 하며 어떻게 경력계획을 수립할지에 대한 고민이라고 생각하지만, 관계 속에서 자기를 확인하고 성장하는 여성들의 경우 진로는 훨씬 더 복합적이고 복잡한 문제들과 긴밀하게 연결돼 나타나게 된다.

누구의 딸, 누구의 친구, 누구의 선후배라는 관계에서 파생되는 역할로 자기를 정체화 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수용하고 습득하는 여성들은 ‘주변인과 친밀감 유지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자기 욕구나 의견을 드러내는 일을 망설이는 상황에 반복적으로 직면하게 되고, 그로 인해 자기 진로 선택이나 결정과 같은 중요한 사안에 있어서도 주변인과의 관계와 관련된 경험과 의미에 영향을 받는다.

부모의 기대와 바람과 반대되는 행동을 했을 때 일어날 갈등이 두렵고, 교수님의 진로 조언을 수용하지 않아 미움을 살까봐 걱정되고, 집단 문화와 위배되는 사람으로 낙인 찍힐까봐 현실을 벗어나고 싶고, 앞으로도 착취당하고 이용당하는 성의 주체로 살아가게 될까봐 겁이 난다. 이 사람 저 사람과의 관계와 기억을 회상하다보면 어떻게 진로를 설정하고 설계해야 할지 점점 더 어렵게 느껴진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진로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여성들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어떤 사람으로 평가되고 인정받을 수 있을까에 대한 문제는 비단 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삶을 살아가야할까에 대한 문제일 수 있다. 따라서 '내 삶의 주인공은 나'라는 단순한 원리를 내세워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아 주체적으로 실행하라는 말은, 20대 초반의 여성들에게는 사실상 무력하다. 관계 안에서 내가 될 수 있었고, 관계 속에서 자신을 완성해온 여성들에게 삶의 주인공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체 여대생들의 진로는 어떻게 다뤄지고 고민되어야 할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살아온 경험을 인정하고, 그 경험에 녹아든 특수성을 반영한 진로를 선택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진로대안들을 탐색하는 일일 것이다.

가령, 착한 딸로 성장하며 자신을 자랑스러운 부모의 딸로 정체화 해 온 여대생에게 무조건 부모와 분리돼 희망하는 직업에 도전하라고 종용하는 대신, 얼마나 부모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는가, 그녀에게 부모는 어떤 의미인가, 왜 그토록 부모와의 관계가 소중하고 중요한가, 부모와 분리를 희망하는가 등의 관계의 역동과 깊이를 파악한 후 부모와 자신 모두 평화롭게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부터 탐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시간을 거친 후 자신의 행복추구와 부모의 요구가 충돌할 때 어떻게 조율하며 서서히 자기 중심적인 선택을 내릴 수 있는지에 대한 과정도 함께 다뤄져야 할 것이다.

누군가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 소중한 사람과 삶을 함께 공유하고 싶은 마음. 타인의 욕구에 부응하며 상대를 기쁘게 하고 싶은 마음은 한심하고 어리석은 마음이 아니다. 그것은 참 아름답고 기특한 착한 마음이다. 지금 여대생들에게 필요한 말은 정신 차리고 독해지라는 '강요'가 아니라 지금 그 마음이 이상한 게 아니라는 '지지'다. 지금 하고 있는 진로고민에 타인만 있고 내가 없는 구멍 난 삶은 아닌지를 돌아보게 하는 자극과 현실을 직시하고 실제적 진로타협을 이끌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안정적인 공무원을 희망하는 부모님의 바람을 참고하되 문화마케팅 전문가가 되고 싶은 나의 마음을 접목할 수 있는 직업부터 먼저 찾아볼까요? 국가 산하 기관 중 문화사업을 벌이는 재단 사무직부터 알아보면 어떨까요?”

“아! 그런 직업이라면 좋을 것 같아요. 한 번 찾아볼래요.”

머뭇거리는 진로선택의 원인을 내 탓으로 귀결하고 자책하던 여대생이 있다면, 정답을 강요하기 보다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위로와 지지를 보내자.

‘네 스타일도 맞아!’
‘네 고민은 일리가 있어!’
‘하지만 이런 방식도 한 번 고민해 볼래?’라고 말이다.

◇이재은 대표는… 현재 여성 커리어 카운슬러로 활동하며 강의, 상담,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과거 페미니즘 매체에서 취재기자로 활동했고 현재 여성 커리어교육업체인 여자라이프스쿨을 아담하게 꾸려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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