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노배우의 회한…'리어왕' 비튼 연극 '리어의 역' 무대에

연극 '리어의 역'서 노배우 역을 맡은 배우 홍원기/사진제공=잘한다프로젝트

평생을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연기한 노배우가 치매에 걸려 은퇴한다.

국가는 그를 위해 그의 이름을 본딴 극장을 짓고 노배우는 극장 무대 바로 밑에서 생활한다.


어느 날, 광대 역할을 하며 그와 함께 무대에 올랐던 광대가 그를 찾아온다. 두 배우는 무대에 대한 아쉬움과 회한을 털어놓는다.

한국 연극계의 대표 극단으로 여러 도전작을 잇따라 무대에 올려온 극단76단이 40주년 기념 공연 '리어의 역'을 통해 또다시 새로운 실험에 나선다.

기국서 상임연출 겸 예술감독의 신작 '리어의 역'은 평생 '리어왕' 역할을 하다 은퇴한 노배우의 삶을 통해 연극과 예술, 세상의 이야기를 동시에 풀어낸다.


셰익스피어 비극 속 '리어왕'처럼 세 딸이 있는 노배우의 모습은 리어왕의 모습과 중첩된다. 장녀와 차녀는 아버지를 요양원에 보내려고 하고 더 많은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 싸운다.

'미친 리어', '햄릿' 시리즈 등을 만들어 온 기국서 연출은 "연극을 오래하다 보니까 '나이 든 배우의 감회는 어떨까' 궁금해졌다"며 작품을 집필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기 감독은 당초 노배우의 1인극이나 노배우와 광대의 2인극으로 구성하려 했으나 "너무 관념적으로 끝날 것 같다"는 이유로 '리어왕'처럼 세 딸을 등장시켰다. 원작에서처럼 아버지의 유산을 둘러싸고 싸우는 세 딸의 모습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그는 연극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무의식과 욕망, 죽음에 대한 공포를 표현하고자 했다. 기 연출은 "('리어왕'처럼) 너무 무겁지 만은 않다. 웃음이 나오는 장면도 많다"며 "젊은 사람보다는 나이 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인 것 같다"고 밝혔다.

극단76단의 신작 '리어의 역' 공연모습/ 사진제공=잘한다프로젝트

노배우 역을 맡은 배우 홍원기는 "(제목의) '역'자가 역할이란 뜻도 있지만 전쟁을 일으킨다는 뜻도 있다"며 "치매에 걸린 노배우가 일으킨 자그마한 전쟁이야기"라고 설명했다. 배우 자신과의 싸움이자 세속화 된 세 딸과의 싸움이란 것. 홍원기는 "(극중 노배우는) 치매란 개인적인 일을 사회적, 정치적인 의미까지 연결지어보려고 하는 인물인 듯 싶다"며 "마지막에 자결을 결심하는데 친구인 광대 때문에 재미있는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고 소개했다.

극단76의 40주년 기념공연은 '리어의 역'을 시작으로 박근형 연출의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김낙형 연출의 '붉은 매미'로 이어질 예정이다. '리어의 역'은 다음 달 8일까지 서울 대학로 '선돌극장'에서 공연된다. 노배우 역은 홍원기, 광대 역은 김왕근이 맡았다. 070-7664-86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