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의 끝은 공장", 兆 단위 투자 나선 'K-파마'

제약업계가 '조 단위' 생산시설 투자에 나섰다. 꾸준한 연구개발(R&D) 성과를 '생산'으로 현실화해 세계시장 공략에 나서기 위한 포석이다.


2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한미약품 (308,500원 ▼7,500 -2.37%)과 녹십자 (109,100원 ▼1,500 -1.36%), 대웅제약 (107,500원 ▼1,700 -1.56%), LG생명과학 (67,500원 ▲500 +0.8%) 등의 올해 생산시설 투자 규모는 1조1500억원에 달한다.

한미약품이 올해부터 평택 바이오플랜트(3000억원)와 중국 옌타이 생산기지(2300억원) 투자에 나선다. 녹십자와 대웅제약은 지난해부터 각각 캐나다 퀘벡 공장(3000억원)과 충북 오송 공장(2100억원) 건설에 돌입했다. LG생명과학은 올해 오송 공장 설비 확충에 1065억원을 쏟아붓는다.

생산시설에 대한 조 단위 투자는 제약업계 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규모다. 한미약품과 녹십자, 대웅제약, LG생명과학의 자산규모는 4조8000억원. 회사 설립 후 쌓아온 자산의 24%가 생산시설에 투입되는 셈이다.

대규모 투자로 세계 시장에 나선다는 게 제약 업계 각오다. 한미약품은 평택 공단 바이오플랜트 제2공장을 신축해 지난해 사노피와 얀센 등 다국적 제약사에 기술수출한 바이오 신약의 글로벌 임상과 허가용 제품 제조에 나선다. 중국 옌타이에 건설할 생산기지 역시 목표는 세계시장이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중국에 건설될 공장은 중국뿐 아니라 세계 시장을 타깃으로 의약품을 공급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녹십자 캐나다 공장은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시장에 혈액제제를 공급한다. 대웅제약은 오송 공장에서 항암제와 생물학제제를 생산하고 LG생명과학 오송공장은 회사가 자체 개발한 백신을 세계시장에 공급할 예정이다.


조 단위 투자가 집행될 생산기지가 창출할 경제 효과는 막대하다. 한미약품이 기술수출한 신약이 평택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을 기반으로 임상과 상업화에 성공하면 한미약품은 다국적 제약사들로부터 약 5조2400억원 규모의 마일스톤(단계별 기술료)를 받는다. 판매 단계에서 받게 될 두 자릿수 로열티 까지 감안하면 이 규모는 더욱 커진다.

녹십자가 노린 미국 혈액제제 시장 규모는 연간 12조원을 웃돈다. 세계 시장의 절반 가량이다. LG생명과학이 오송공장에서 생산할 5가 혼합 백신(디프테리아, 파상풍, 백일해, B형간염, 뇌수막염을 동시에 예방하는 백신)의 글로벌 연 매출 목표는 1000억원 이상이다.

업계가 과감한 생산 투자에 나설 수 있는 배경은 꾸준한 R&D 투자다. 한미약품과 녹십자, 대웅제약, LG생명과학의 지난 10년간 R&D 투자규모는 2조5000억원에 육박한다. 녹십자 관계자는 "R&D 투자가 신약개발로 연결돼, 이를 세계시장에 판매할 생산기지 투자에 나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생산시설이 선진시장인 미국과 유럽의 제조품질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연구실에서의 R&D 이상으로 높은 생산 설계기술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R&D의 끝은 공장'이라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은 "공장에 대한 투자도 결국 R&D의 연장선"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생산도 R&D의 한 부분이라는 점을 인식해 최근 생산설비 투자 세제지원을 해 주기로 방향을 정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며 "다만, 세제 지원 범위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해질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