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계의 방정환' 송인현 연출 "아이들을 가르치려 하지 말라"

극단 '민들레' 대표인 송인현 연출은 20년간 어린이극을 만들어오면서 '연극계의 방정환'이란 별명을 얻었다. /사진=국립국악원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8일까지 공연하는 어린이국악극 ‘만만파파 용피리’는 신라의 악사 ‘비울’과 백제의 소리꾼 ‘나눌’이 서로 다른 음을 조화롭게 맞출 수 있는 절대 피리 ‘만파식적’을 찾아 떠나는 여정을 다룬다. 만파식적은 신라 시대의 설화다. 해룡이 된 문무왕과 천신이 된 김유신이 귀한 물건을 보낸다는 점괘가 나와 아들 신문왕이 감은사로 갔다. 거기서 만난 용이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면 천하가 태평해진다고 해 그 산의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보관했다는 내용이다.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피리를 불어 왜적도 무찌르고 문제를 해결했다.

이런 ‘고리타분’한 설화를 아이들이 재미있게 받아들일까. 더군다나 국악으로? 해결사는 어린이극만 20년째 만든 송인현 극단 민들레 대표다. 그가 하는 연극의 목표는 ‘행복한 경험을 많이 느끼게, 그림책을 넘기듯 쉽게 보면서’이다. 그의 별명이 ‘연극계 방정환’이라 하니, 어느 정도 실력인지보다 어느 정도 어린이 눈높이에 맞출지 짐작할 만하다.


“어떻게, 이렇게 포즈를 취해볼까요?”

국립국악원에서 만난 송인현 극단 민들레 대표는 천진난만했다. 국악원 한쪽 대나무 수풀 쪽으로 성큼 다가서더니 대나무를 붙들곤 환하게 웃었다. 평생 어린이극을 하며 어린이의 시선을 고민해 온 사람답게 유쾌하고 꾸밈이 없었다.

‘연극계의 방정환’이란 수식어는 어떻게 붙게 됐을까. 1996년 어린이극단 ‘민들레’를 창단한 뒤 21년 동안 ‘마당을 나온 암탉’, ‘솟아라 도깨비’, ‘이야기 심청’, ‘똥벼락’ 등 다양한 어린이극을 선보였다.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 한국본부 이사장도 역임했다.


봉산탈춤 이수자이기도 한 그는 처음엔 전통문화를 아이들에게 알리고 싶어 어린이극을 시작했다.

“교육도 서구 중심이잖아요. 우리 아이들의 생각 구조가 ‘우리(나라) 아이’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문화적 유전인자’를 공유해야 우리 아이로 자랄 수 있다고 생각했죠. 옛이야기나 우리 신화를 바탕으로 우리 장단과 우리 몸짓을 전달하고 싶어 시작했어요.”

그는 “무릎을 꿇는 작업이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아이들의 시선에 맞춰 바라보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도 벗어나고자 한다.

“‘어린이 문화운동’을 한다고 하면 많은 사람이 교육적인 면을 강요해요. 그러나 저는 교훈을 이야기하지 않아요.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가까이 갈까를 고민하죠.”

송인현 연출은 이번 어린이날 '만파식적'을 주제로 한 어린이국악극 '만만파파 용피리'를 선보일 예정이다. /사진=국립국악원

그에게는 손주 둘이 있다. 손주를 돌보고 함께 놀면서 어린이극에 대한 영감을 많이 받는다. 그는 “손주한테 자극적인 음식을 절대 안주듯이 어린이극도 결국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했다.

신라의 전설 속의 피리 만파식적을 주제로 한 어린이국악극 ‘만만파파 용피리’를 연출할 때도 그는 작품의 무게를 덜어내는 방향을 가장 고민했다. 여러 자문위원이 교육적인 의미를 많이 설명했지만, 그는 역으로 “교육을 안 하는 방법”을 궁리했다.

그가 영감을 받은 것은 유럽의 ‘스몰사이즈’ 연극이다. 0세에서 6세까지를 대상으로 연극, 무용, 미술 등 다양한 요소가 결합해 있다. ‘기-승-전-결’의 이야기보다는 아이들이 직접 만지고 체험하고 상상하고 몸으로 활동할 수 있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저는 ‘베이비드라마’라고 번역해요. 36개월 미만의 아기가 가장 많이 보는 공연이죠. 유럽에서는 재단과 기금을 만들어 영유아들이 이런 공연을 보게 한대요. 공연을 통해 전두엽이 발달하게 되고 집중력도 분노조절능력도 높아진대요. 국·영·수 같은 인지교육보다 훨씬 중요하죠.”

그는 “우리나라 부모님들은 조급함에 빠져있다”고 지적한다.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이른바 ‘정답’이 제시된 쉬운 연극을 선호한다는 것. 그는 “연극은 다양한 인상을 안고 있는데 보는 아이들의 관점에 따라 자유롭게 그 인상을 받으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송 연출의 ‘아이 사랑’은 극단 운영에서도 묻어난다. 극단 민들레의 단원 모집방식은 독특하다. 공부방이나 장애인단체에 가서 5주 이상 봉사를 해야 한다. 그는 “공부방을 2~3번 정도 가면 그제 서야 무릎을 꿇고 아이를 보더라”라며 “제가 아동심리를 가르쳐줄 수는 없으니 직접 아이들을 이해하고 가까이 갈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추구하는 세상은 ‘아이들이 행복한 사회’, 또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회다. 개인적인 목표 역시 극의 예술적인 완성도를 아이들의 눈을 통해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어린이에게 정말 필요한 작업을 해주고 싶어요. 그렇게 바라보면서 저의 영혼도 정화된다고 할까요. 초등학교 1 학년 혹은 유치원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구성으로 제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철학을, 예술적인 완성도 있게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오랫동안 어린이극을 해 온 전문가로서 이제는 자부심을 느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