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단, 한진해운엔 사재출연 요구하지 않은 이유

채권단이 현대상선과 달리 한진해운에 사재출연을 요구하지 않은 건 대주주 책임이 현대상선보다 작고 한진그룹이 이미 한진해운에 수천억원을 지원한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2일 한진해운이 공개한 자구안에는 360억원의 비용절감 계획이 추가로 담겼으나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의 사재 출연은 포함되지 않았다. 앞서 채권단은 자율협약을 신청한 한진해운에 자료 보완을 요구하면서 용선료 인하 계획 구체화, 사채권자 집회를 통한 공모채 채무재조정 계획 구체화, 4개월 간의 운영자금 마련 방안을 요구했다. 이미 채권단의 요구에 사재출연은 필수 요건으로 포함되지 않았다.


채권단 관계자는 "대주주 손실분담은 구조조정에서 당연히 필요한 원칙이지만 채권단 내부에선 조양호 회장이 구원투수로 한진해운을 맡게 됐고 한진해운 모기업인 대한항공이 이미 유상증자 등으로 한진해운을 지원하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는 점을 감안해 왔다"며 "애초부터 사재출연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입장이 아니었다"고 전했다.

우선 조양호 회장이 한진해운 경영을 '구원투수'로 맡게 됐다는 점이 채권단의 '예외적 판단'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파악된다. 채권단은 현대상선 자구계획에 현정은 회장의 사재출연을 포함시킬 것을 요구해 왔고, 실제로 현 회장은 300억원의 사재를 출연했다. 하지만 조양호 회장은 경영 상황이 악화된 한진해운을 대신 맡아 경영해 온 만큼 현대상선보다는 대주주 책임이 경감돼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채권단 안팎에 존재해 왔다. 한진해운은 고 조수호 회장이 2006년 타계하면서 부인인 최은영 회장이 경영을 맡았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후 1조원에 가까운 적자를 내면서 최 전 회장의 시아주버니인 조양호 회장이 한진해운을 맡게 됐고, 대한항공은 2014년 한진해운을 자회사로 편입했다.

여기에 한진해운을 떠안은 대한항공이 지난 2014년 부채비율이 1000%대였던 한진해운 자본금 확충을 위해 3자 배정 유상증자로 한진해운의 신주를 4000억원에 인수하는 등 지원 노력을 기울여 온 점도 채권단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대한항공은 유증 외에도 2014년 자사주를 연계해 한진해운이 발행한 교환사채(EB) 손실을 보전해주는 계약을 체결했다. 올해 2월에는 자회사 편입 전 대한항공이 한진해운에 빌려줬던 기존 대여금을 영구채로 전환해 2200억원을 지원했다. 유증과 영구채로만 6200억원을 투입한 것이다.


한편 채권단은 오는 4일 한진해운의 자율협약 개시를 결의한다. 채권단은 일단 3개월간 채무상환을 유예해 주는 개시안에는 동의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채권단이 출자전환 등 부채비율을 낮춰주는 본격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할 지 여부는 한진해운의 용선료 인하 협상 추이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