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호 "기업 구조조정, 5조원 갖고 되겠나"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뉴스1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기업 구조조정 재원으로 최소 5조원 이상은 필요하다는 인식을 나타냈다.

'한중일, ASEAN+3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 참석차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찾은 유 부총리는 2일(현지시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야당이 제안한 법인세 인상안으로는 기업 구조조정 재원 마련에 부족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와 여당은 수출입은행, KDB산업은행 등 국책은행 출자에 정부 재정과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모두 활용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야당은 법인세율 인상으로 마련된 재원을 활용하자고 주장하면서 대립 중이다.

야당은 현행 22%인 법인세율을 25%로 3%포인트 높여 5조원 안팎의 추가 재원을 확보해 기업 구조조정에 활용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유 부총리는 이와 관련해 "야당이 그걸 모두 구조조정에 쓰겠다고 했느냐"고 반문한 뒤 "5조원 가지고 되겠느냐"고 했다. 이어 "여기(구조조정)에 쓰려고 세금을 저기서 더 걷는데 좋은 정책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유 부총리는 국책은행 출자에 한국은행 발권력을 동원하자는 이른바 ‘한국판 양적완화’에 대한 입장도 밝혔다.

그는 "이주열 총재께서도 구조조정 과정에서 역할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다만 그는 이 총재를 비롯해 한은 고위 인사들이 발권력 동원 전제조건으로 ‘국민적 합의’를 강조한 것에 대해서는 "내심은 모르겠지만 국민적 공감대라는 말의 뜻을 모르겠다, 어디까지가 합의인지..."라며 다소 부정적 견해를 나타냈다.

그는 한은 발권력으로 부실기업을 지원하는 것이 국제기구 등에서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에 대해선 "그럴 수도 있다"며 “그런 가능성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대응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정부와 한은의 국책은행 출자 분담비율에 대해선 “필요하다면 같이 해야 한다”며 “통화당국이 얼마를 해주고 재정이 얼마를 할지 잘 따져봐야 한다. 좋은 조합을 찾아보고 있다”고 답변했다.

유 부총리는 현 시점에서는 정확한 구조조정 재원을 추산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이제 논의가 막 시작한 단계여서 개별 기업의 법정관리 여부 등을 확정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유 부총리는 구조조정만을 위한 추경(추가경정예산) 편성에도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 그는 “추경을 해야 된다면 하겠지만 구조조정만 가지고 하기에는 쉽지 않다”며 “심각한 경기하락, 대량실업 등 요건이 충족되기 어렵다”고 했다.

유 부총리는 정부가 나서서 구조조정을 하게 되면 현대상선, 대우조선해양 등 위기에 빠진 기업들이 회생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는 “현대상선의 경우 용선료 협상이 기한 내에 안 되면 법정관리가 불가피 할 것이라고 했다”며 “대우조선해양은 그 다음의 문제”라고 답변했다.

기업 구조조정 시한을 묻는 질문에는 “불과 며칠 사이에 답이 나올 수 없는 문제”라며 “너무 급하게 봐선 안 된다”고 했다. 내년 대선정국을 고려하면 올해까지가 구조조정의 데드라인 아니냐는 질문에는 “국민경제 부담을 최소화하는 시간”이라는 말로 답변을 대체했다.

유 부총리는 정부가 수년간 기업 구조조정에 실패한 것에 대해 우선 사과가 필요하다는 야권의 주장과 관련해 "필요하다면 하겠다"고 답했다.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 의혹에 대해선 "사실로 확인되면 법적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홍기택 전 산업은행장 등 당시 국책은행장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에는 "단순 감독책임이면 가장 큰 처벌이 해임인데 지금 그 자리에 없으니 더 묻기 어렵지 않겠냐”고 했다. 그러나 산은도 부실위험을 숨기기 위해 분식회계 등 위법행위를 했다면 처벌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구조조정에 앞서 책임소재를 명확히 가릴 필요가 있다는 지적에는 "원인규명을 위해 조사한다고 2년 정도 걸릴 텐데 그걸 한 뒤에 (구조조정) 하겠다고 하면 다 놓칠 수 있다"며 "급한 일은 막으면서 해야 된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