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현대건설 회생시킨 신보 한진해운엔 왜?

한진해운/사진=머니투데이DB

신용보증기금이 한진해운과 자율협약을 맺는 채권금융기관으로 참여하지 않기로 하면서 모험보다 안정을 선택했다. 이 같은 결정을 내리기까지 내부에서도 격렬한 의견충돌이 있었다. 명목상으로는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 지원이 우선이라는 설명이지만 이러한 배경에는 현대상선보다 한진해운에 대한 전망이 어둡다는 내부 의견이 우세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사실 신보는 무리수라는 비판을 감내하면서까지 현대건설과 하이닉스반도체 같이 대기업을 지원한 경험이 있다. 두 기업은 외환위기를 겪은 이후 2001년 만기가 도래한 회사채를 갚지 못해 자금난에 빠졌고 결국 신보에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당시에도 극심한 반발에 부딪쳤다. 중소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신보가 대기업을 지원한 사례가 없고, 지원받은 대기업이 부실해지면 기금 자체가 부실화할 가능성이 커질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신보는 현대건설과 하이닉스반도체 보증을 서주기로 결정한다. 대기업이라고 하더라도 중소기업들의 연쇄도산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2002년 9월 국회 국감자료에 따르면 당시 신보는 현대건설에 9973억원, 하이닉스반도체에 5259억원을 보증했다.

이때 신보는 한시적으로 회사채 신속인수제를 도입한다. 이 제도는 만기가 찾아온 회사채 상환이 어려운 기업들을 위해 사모 방식으로 발행한 회사채를 산업은행이 인수해주는 제도다. 산은이 인수한 채권(약 80%)은 대부분 신보가 신용을 보강한 프라이머리 자산담보부증권(P-CBO)으로 편입돼 자금난 부담을 덜어준다.


결과적으로 현대건설과 하이닉스반도체는 신보가 참여한 새로운 금융기법을 통해 회생에 성공했다. 신보는 당시의 성공경험을 토대로 2001년부터 1년간 한시적으로 운용한 회사채 신속인수제와 P-CBO 카드를 2013년 조선·해운업이 위기에 빠지면서 다시 꺼내 들었다. 하지만 좀처럼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특히 해운업의 경우 업황 자체가 10년 가까이 불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당시 현대건설과 하이닉스반도체는 각각 국가의 근간이 되는 건설과 전자산업이어서 반드시 살려야 한다는 명분도 있었다. 반면 해운업은 이런 명분도 적고 사업 전망도 밝지 않다. 신보는 이미 지난 연말을 끝으로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에 대한 추가 보증은 하지 않고 있다.

두 회사의 자구책 마련도 더디다. 신보 내부에서 외환위기로 자금난에 빠진 기업들보다 상황이 심각하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용선료 협상 등에서 현대상선보다 한진해운의 구조조정 방안 마련이 소극적이어서 한진해운에 대한 신보의 태도가 좀 더 냉정해졌다는 평가다.

신보 관계자는 "2001년 현대건설이나 하이닉스반도체 사례를 보면 결국 기업들의 회생의지와 사업전망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며 "다만 신보가 한진해운에 대한 지원을 끊거나 완전히 등을 돌린 것은 아닌 만큼 좀 더 지켜봐달라"고 말했다.